이문열씨와 '무장된 독자'들

/이명원

독자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에서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대표 화덕헌) 주최로 진행된 `이문열 책 반환행사' 때문이었다. 이 행사는 이문열 소설의 독자들이 이 몇 달간 작가가 보여준 문학과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그들이 소장해왔던 작품을 저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사였다.

관객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다. 지난 11월9일 인천에서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인천시민 모임'(운영위원장 최원식 인하대 교수)이 결성되었다.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해 서둘러 종영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를 관객들이 나서서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의 출발이었다.

이 두 사례는 `숨어 있던' 독자와 관객이 현실의 `전면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독자라든가 관객들의 현실로의 전면적 부상이라는 이 현상이, 실제로는 뚜렷한 시대적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10대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팬덤문화'만 보더라도, 오늘날의 독자나 관객들은 과거처럼 숨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현실의 전면에 나서 예술작품 생산자에 대한 호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존재이다. 비유컨대, 과거의 독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예술적 자극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어적 독자'였다면, 현대의 독자는 그 자극을 자신의 고유한 관점 속에서 능동적으로 소화하고 반응하는 `무장된 독자'로 불릴 수 있겠다.

다시 위의 두 사례로 돌아가 보자. 이문열의 소설은 작가의 주장대로라면 현재까지 약 2500여만 권이 판매되었다. 판매량만 보자면 문학시장의 블록버스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신예 정재은 감독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관람인원은 몇 명일까? 11월13일 현재 전국관객 3만6121명이란다. 물량주의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보자면, 거대한 이문열의 문학에 비교할 수 있는 영화들은 최근 영화판에서 각광받는 몇몇 `조폭영화'들로 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가? 예술작품의 탁월함에 대한 물량주의적 평가라는 것이 실상은 대단히 허구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현실의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독자나 관객의 의사개진의 심각성을 작가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은 독단이나 아집에 머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부분에서 이문열씨의 독자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책 반환행사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이문열씨의 발언이다. “독자님, 얼른 반송해 주세요. 책값은 현행법상 최고 이율을 붙여 반환하겠습니다. 아울러 부탁하는 바는 어디 가서 내 책을 읽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직접 사람 골라가며 팔지 못하다 보니 고객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모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그래도 작가인데, 책 반환 행사 이후에는 어느 정도 생각에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 신문기사에는 책 반환 행사 며칠 후인 11월7일, 이문열씨가 한 케이블 텔레비전 녹화방송에 출연하여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적혀 있다. “사람들이 구체적인 이해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의견에) 감염되고, 물드는 형태로 반환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되었던 홍위병 발언에 대해서는, “선견지명이 있어 올바른 표현을 쓴 것 같다”라는 주장도 했다. 관점의 변화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항간에는 이문열씨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그의 문학을 `우국문학'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을 통해 추어올리는 문인들도 있는 듯한데, 이런 분들의 눈에는 이문열씨의 오만하고 편협한 `독자모독'이 정녕 보이지 않는 것일까? `책 반환 행사'를 통해 독자들은 그렇게 묻고 있다.

이명원/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