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소년의 미학...

산골소년의 미학

: 예민의 음악에 대한 작은 글

들어봐요 이 얘기를 세발 자전거와 바둑이
1972년 초가을 어느 날 우리 집앞 골목길
흙투성이 집잃은 개 내가 붙여준 이름 "삐꾸"
언제 부턴가 내 빨간 자전거를 참 좋아도 했지요
골목길 따라 학교앞까지 우리 형 만나러
신호등 두개 건너 약국지나 교문 앞 돌담길 따라서
어린 나의 시절에 소중한 만남을 알게해 준 너
삐꾸 그 이름을 불러 보는 건 따뜻한 내 어린 추억 때문이야

꼬마 아줌마네 집 개나리 꽃 담장 너머로 피었을 때
아침 봄 햇살같은 삐꾸의 모습이 골목 끝 전봇대 밑
흙투성이 집잃은 개 내가 부르던 이름 "삐꾸"
하지만 이젠 이 좁은 골목길에 외로운 내 세발 자전거
골목길 따라 학교 앞까지 책가방 매고서
삐꾸와 함께 걷던 이 골목길을 걸으며 널 생각하는데
어린 나의 시절에 소중한 만남을 알게 해 준 너
삐꾸 그 이름을 불러 보는 건 따뜻한 내 어린 추억 때문이야

(예민, "세 발 자전거와 바둑이")

참 좋아하는 노래이다. 개인적으로는 멜로디와 어떤 악기를 쓰느냐 못지않게 가사도 좋은 노래를 선호하는지라 예민의 노래는 나에겐 특별함이 있다. 예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유명한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인해서 였다. 사실 나 자신이 좀 까다로운 편이어서 그 곡의 녹음 상태에 대한 작은(?) 불만-에코의 상태와 녹음 제반의 서투른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의 노랫말은 참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언젠가 시골에 가게된 예민을 찍은 TV프로에 매형이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된 일이 있어 예민의 순수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고,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으로 현대인 답지 않은 동심이 그에게는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에게서 보이는 가장 좋은 점은 일단은 노랫말이다. 그의 절제력에 많은 호감을 느끼게 된다. 요즘처럼 직설적인 내용이 노랫말 뿐 아니라 시나 글쓰는 여러 방면에서 보이는 시기에 그의 가사는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한 편의 동양화같다.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서도 어떤 감정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소년의 기다림, 그리고 토라짐의 정서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키요라"라는 노래에서 "키요라"는 마오리 족의 인사말이라고 하는데, 예민은 어린 시절 자신의 뒷 동산에 불어오던 바람의 이름으로 그것을 선택했다. 참 신선한 발상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의 일관된 "동심"이라는 메시지가 요즘을 살아가는 내게는 많은 감동을 준다고 하겠다.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서 시에틀의 종합예술 대학인 서북부 코닛시 제닛스 지택이라는 학교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바로크 이전의 음악과 민속음악에 대한 공부를 했다. 얼마전 귀국해서 3집 "노스텔지아"를 내놓았는데 이전에 비해 더욱 세련되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들게 되어 참 바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도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화려하지 않은 "절제미"에 있다고 하겠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언제나 단순함 속에서의 깊이를 생각해요. 3집 앨범 작업중에도 저 자신에게도 몇 번이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가'란 질문을 해요. 음악이 화려하면 시각적 느낌이 강해져서 그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 같거든요. 세계적인 명곡이나 가요의 명곡이 멜로디도 단순하고 코드도 복잡하지 않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걸 보면 제 생각은 더 확고부동해지죠.

끊임없는 학문의 추구와 음악에 있어서 절제의 아름다움, 무엇보다 우리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어린시절의 소중한 정서들을 일깨워주고 있는 예민의 음악을 통해 잠시나마 삶의 가치들을 정리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하는 예민의 노래>

아에이오우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키요라
세발 자전거와 바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