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에 대한 강준만의 오해

/고종석(자유의 무늬, 1998)

나는 <인물과사상>의 애독자다. 강준만이 그 무크를 통해서 시도하고 있는 인물비평은 나를 늘 계몽한다. 그러나 나는 <인물과사상>을 읽으며 이따금씩, 강준만과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일례로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경우가 그렇다.

손호철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 강준만은 그간 수도없이 비판해 왔다. 손호철에게 호남차별의 정서가 있고, 그 연장선 위에서 김대중 혐오가 있다는 것이 그 비판의 큰 이유들이었다. 나는 손호철에게 호남차별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그걸 고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남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에 손호철에게 김대중 혐오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그는 90년대 이후 김대중의 정치 행보에 대해 일관되게,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강준만이 지레짐작하듯 손호철의 호남차별 정서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손호철은 자신이 호남을 차별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므로, 손호철이 김대중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김대중의 집권이 우리 정치나 사회의 진보에 - 구체적으로 지역주의 극복이나 민주주의 신장이나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나 정치 문화 개선에 -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김대중을 반대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라고 손호철이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의 '김대중 비판'에서 그의 '호남차별 정서'를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물론 손호철의 정치적 판단과 실천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가 깊은 생각 없이 제멋에 겨워 김대중에게 마구 던져댄 말의 돌멩이들은 우리 사회 파쇼 세력에게 크게 이로웠고, 그 자신이 속해 있다는 진보 세력을 포함한 민주주의의 진영에 크게 해로웠다. 우리는 그에게 그 잘못을 일깨워야 한다. <조선일보>나 그 자매지에 글을 쓰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도 그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문제는 그 일깨우는 방식이다. 강준만은 <인물과사상> 8권에서도 몇 차례 손호철을 비판한다. 그것도 진지하게. 나는 강준만의 손호철 비판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강준만은 손호철을 논쟁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강준만이 그릇 판단된 것이고, 거기서 강준만의 '일탈'이 시작된다.

예컨데 강준만이 <인물과사상> 8권에서 손호철을 비판하며 끌어들인 텍스트 두 개, 즉 <현대사상> 특별 중간호 '한국 좌파의 목소리'에 실린 권두좌담과, <현대사상> 가을호에 손호철이 기고한 수필 <유령을 찾아서, 파리에서 레닌그라드까지>를 다시 읽어보라. 거기서 드러나는 손호철은 천진무구한 어린아이다. 강준만도 그 부분을 인용하자면, 김동춘이 부산지역의 소외와 전라도 지역의 소외를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없다고 지적하자, 손호철 어린이 가로되: "그러면 강원은 저항적 지역주의인가요? 소외되면 저항적 지역주의인가요?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물론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손호철이지만, 내가 거기서 읽은 것은 손호철의 호남 혐오가 아니라, 손호철의 동심이다. 아직 자신과 세계를 분리시키지 못한 유아의 동심 말이다. 그에게는 사회와 정치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아예 없다. 더불어 그에게는 호남에 대한 악의도 없다. 강준만은 그 좌담을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좌담 참석자 가운데 손호철이 제일 손위인 듯 한데, 실제로 끊임없이 재롱을 피우고, 썰렁한 우스개로 유치한 말장난 하는 사람이 손호철이다. 물론, 그건 편집자가 좌담 내용을 가위질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원래 좌담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럼 <유령을 찾아서, 파리에서 레닌그라드까지>라는 멋진 제목을 단 수필은 어떤가? 자신의 발제와 논문에 대해 프랑스 학자들이 보여준 관심에 대한 자랑, 자기가 아는 프랑스인이 그 쪽 학계에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한 자랑, 핀란드에는 핀란드역이 없다는 대단한 사실에 대한 호들갑 - 이것은 악한의 모습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유아의 모습이다. 문제의 좌담과 수필에서 드러나는 손호철의 얼굴은 한국의 '좌파'에는 드문 보편주의자의 얼굴인데, 그의 보편주의는 유아적 보편주의다. 물론 유아라고 해서 나쁜 짓을 해도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그러나, 강준만은 손호철과 논쟁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유아와 무슨 논쟁을 하는가, 얼러가며 가르쳐야지.

말하자면 진중권이 <월간조선>의 조갑제 편집장을 얼러가며 그르치듯, 강준만은 손호철을 얼러가며 가르쳐야 한다. 본바탕은 선한 듯한데 힘센 매체를 통해 세상에 해 되는 소리를 마구 해댄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손호철과 조갑제는 아주 닮았다. 4년쯤 전에 고성국이라는 사람이 조갑제와 열심히 논쟁을 하려고 한 적이 있다. 조갑제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얼러가며 가르쳐야 할 대상안데도, 고성국은 그걸 몰랐다. 물론 진중권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조갑제와 논쟁하지 않는다. 강준만은 어린 아이를 어르며 가르치는 법을 진중권에게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