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입니다..

시청률 차갑지만 삶의 애환 뜨끈뜨끈"

: 김운경 작가의 <죽도록 사랑해>

/ 한겨레

　

시청률만 따진다면 문화방송의 주말극 〈죽도록 사랑해〉(극본 김운경, 연출 소원영)는 일찌감치 실패한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지난달 초 첫 전파를 탄 이후 한달이 넘도록 시청률은 10% 초반에서 헤매고 있다. 주말극의 경우 아무리 죽을 쒀도 20% 아래로는 좀체 떨어지지 않는 문화방송으로서는 체면이 안 서는 수치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체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같은 방송사의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에 대한 탐구의 깊이’ 같은 것이 이 드라마에서는 꿈틀 살아 있다.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가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순정파 재섭(이훈)과 그의 사랑을 외면한 채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설희(장신영)의 이야기를 기본축으로 하지만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주연보다 빛나는 개성있는 조역들이다.

한회 20명이 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서로 성기지 않고 저마다 차별성 있는 캐릭터를 자랑한다. 비록 쌀독을 걱정할 정도로 남루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독립운동가의 아들답게 꿋꿋함을 잃지 않는 엿장수 이씨(임현식), 한때 형사였지만 지금은 억척스런 부인에게 얹혀사는 마당발 장 사장(최불암), 화류계 출신으로 미제물건 장사를 하는 설희 엄마(이효춘), 언제나 당당하게 빌붙어 얻어먹는 걸구(이원재), 현실 순응을 최고 삶의 가치로 치는 남 과장(이문식)과 푼수기가 있는 그의 애인 재옥(지수원) 등의 주변 인물이 드라마에 윤기를 더한다.

특히 〈달마야 놀자〉〈공공의 적〉 등의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드라마에는 처음 출연한 이문식은 소심한 소시민의 표정을 능청스럽게 보여주었고, 언제나 연기력이 문제였던 지수원은 〈해변으로 가요〉에 맞춰 개다리춤 실력까지 선보이며 파격 변신에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70년대 서민들 삶의 원형질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비록 가난하지만 경우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작가 김운경(49)의 입김이 있다. 〈서울의 달〉〈옥이이모〉〈파랑새는 있다〉 같은 작품을 통해 주류 여성작가 세계와는 사뭇 다른 서민이야기를 천착해 온 그가 이번에도 녹슬지 않은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지난주 엿장수 이씨와 그의 딸 광숙의 대화에서는 그런 애정이 녹아 있다. 파업을 주도하다 직장에서 잘리고 유치장까지 갔다온 딸 광숙이 “괜히 저 때문에 고생시켜 죄송해요”라고 하자 엿장수 이씨는 “죄송할 것 없다. 애비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잘못한 것 없다”고 감싼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인터넷 게시판은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작가에 대한 평이 유달리 많다.

“생생한 캐릭터, 감칠맛 나는 대사, 그 밑에 깔려 있는 인간에 대한 신뢰의 시각, 이런 것들이 바로 김운경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 드라마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네요.”(‘또다른 서울의 달을 기대하며’ 안혜영)

‘20~30년 전 우리가 그런 시대를 통과했구나’ 하는 추억과 공감을 자아내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는 또다른 재미다. 지난주 방영분 중 국기 하강식에서 경찰서 앞마당에 모인 사람뿐 아니라 파업하다 들어온 유치장의 여공들까지 자세를 곧추세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경건하게 듣고 있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연출자 소원영 프로듀서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한데다 다루는 소재가 무거우니까 10대들이 몰입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것 같다”며 “시청률보다는 좋은 드라마라는 평가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드라마의 흡인력을 높이기 위해 다다음주께부터 6년 정도 세월을 건너뛰어 다른 배경으로 이야기를 좀더 속도감 있게 펴나갈 계획이다.

김도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