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 닉슨을 이긴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온 국민이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를
합창하는 시대에, 방송은 어떤 의미에서건 보이지 않는 ‘권력’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권력의 한편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프로그램에
반영하려는 시청자들의 요구 또한 커져가고 있다. 아직은 방송사 드라마 게시판의 ‘한상궁 살려내기’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적어도 ‘바보상자 앞의
바보시청자’라는 명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방송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테마로 <한겨레>는 전여옥씨와 변희재씨를 불러냈다. 두 사람은 일단
곳곳의 지면에서 방송과 관련된 칼럼을 쓰며 밥벌이를 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들이다. 평소 쓰는 글을 보건대,
사이다처럼 속시원한 말들을 거리낌없이 할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씨라 하면 일찍이 ‘일본은 없다’고 외치고 나와 여성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선동하고, 디지틀조선의 칼럼엔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이라며 칼을 휘두르는 여성 논객 아닌가. 변씨 또한 나이차이는 십수년이지만 내공은
만만찮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통신란에서 글발 휘날리기 시작해 대학재학시절 <스타비평>이란 책을 내고, 올해 정치웹진 시대소리를 만든 인물이다.
최근엔 인터넷 언론 대자보와 합병을 결정해 새로운 언론인 ‘브레이크 뉴스’를 준비중이다. 변씨는 자신의 칼럼에서 수차례 전씨의 ‘방송관’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바 있다.
전여옥 = 방송은 신문과 다른 저널과 차이가 있어요. ‘브로드캐스팅’이라 얘기하듯,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단시간에 뿌려진다는 점에서 큰 힘을
갖고 있는 거죠. 근데 오히려 단시간에 많은 사람이 접속한다는 자체가 방송이 시대의 사상이라든가 이데올로기를 이끌고 가는 매체가 될 순 없는
이유가 돼요. 방송은 포퓰리즘의 도구가 되기 쉽다는 거죠. 알찬 콘텐츠와 삶을 위로할 수 있는 오락기능, 그게 가장 중요해요. 특히 방송에겐
교육, 에듀케이션이 아닌 셀프 러닝이라는 정보전달자의 역할이 있죠. 한국의 방송이 물론 이전 땡전뉴스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슬쩍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건 우려할 만한 일이에요.
“짧고 굵게 하죠.”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합의하기 무섭게 전씨가 ‘간단히’ 방송의 기능을 규정해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위로하는
오락’은 오히려 더 큰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지만, 전씨는 깊이 들어가는 걸 한 칼에 자른다.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통치적인 이데올로기. 정권에
필요한. 모디파이하거나 수단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거죠.”
변희재 = 총론적인 면에서 생각이 다른데요. 제 얘기를 해본다면 지금은 인터넷이 더 절 규정하지만, 항상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의
칼라 텔레비전 세대거든요. 내 정체성을 구현한 매체라는 거죠. 이런 세대들에게 텔레비전은 단순한 도구나 정보전달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로그램이 다양하니까 타겟별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꼭 4천만이 만족하는 프로그램만 필요한 건가. 아니 4천만을 다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죠. 그게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고. 보수적인 것도, 개혁적인 프로그램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 = 변희재씨도 구세대네요. 신세대는 인터넷이잖아요. 냉정하게 말해 부자들은 텔레비전 안 봐요. 텔레비전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오락거리라는 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거든요. 일종의 간접 체험이고 부자의 침실이나 화장실 엿보고 싶은 그런 체험드라마인데. 지금 변희재씨가 얘기한 건
이미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 이미 전달되고 충족되는 거에요. 내가 문제삼는 건 공중파의 영향력이 아직 큰 상태에서, 공중파에겐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룰이 필요하다는 거죠. 협소한 시장에선 란제리쇼도 볼 수 있고, 히스토리 채널에선 이즘에 대해서 더 파고 들 수도 있어요. 이즘 같은 이슈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최수종쇼> 같은 저급 프로그램보단 나도 고급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청자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강요하거나, 왜곡하거나
가르치려거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시청자들에게 매우 불쾌하고. 시청자들에게 방송사의 영향력은 폭발적이지만 여론화시키는 영향력이나 오피니언
리딩으로서의 기능을 티브이는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변 = 다채널 다프로그램 시대죠.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은 좋아요. 근데 이른바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사실 필요한
프로그램인데 도대체 누가 이걸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양성의 시대에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다 비슷해보일 정도에요.
수많은 채널들이 있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문제를 공중파 특히 공영방송이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한국사회를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얼마전
‘가난, 대물림’이란 프로그램을 했어요. 프로그램 자체가 보고 싶은 내용은 아닐 거에요, 저도 보면서 불편했으니까. 하지만 공영방송이 아니면
어디서 그걸 만들 수 있을까. 지금 좀 미숙하더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전 = ‘가난’이란 소재는 방송에서 굉장히 센세이셔널리즘하고 감성적인 소재에요. 방송이 좋아하는 소재고. 그걸로 공영방송이라 할 순 없고,
문제는 미숙하게 다뤄선 안 된다는 거죠. 공영방송은 국민의 세금이고, 국민들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한쪽에 치우칠 때
미숙하고 3류 아마추어리즘이 돼 버리는 거에요.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고 성숙하게 만들면 누가 뭐라 안 그래요. 한국의 매체비평, 인물의 현대적
조명 같은 것 할 땐 합당한 근거와 매우 성숙한 잣대, 누구에게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 가져와야 한다는 겁니다.
변 = 자연스레 텔레비전과 계급의 문제를 얘기하게 되는데…. 전 제대로 ‘가난’을 파고들면 상업적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로 얘기하면 텔레비전에서 특히 드라마에서 부유층, 상류층을 그리는 빈도가 더 크거든요. 보는 사람들은 상류층이 아닌데 티브이의
라이프 스타일은 상류층을 지향하는, 99%가 1%의 삶을 동경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해왔어요. 그걸 좀 돌려놔야 하는 시기인
거죠.
전 = 그게 돌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린 된장찌개 먹고 사는데 <대장금>의 화려한 음식을 보고, <올인>을 보잖아요. 사람들은 티브이에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해요. 요리프로에서 콩나물 볶음,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기 하면 안 봐요. 현실이 아니라 티브이에선 좀더 화려한 것을
구경하고 싶어하고 틈입자가 되고 싶어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티브이가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라고 봐요. 한국만큼 ‘배가 고픈 건 참아도 아픈 건
못 참는’ 나라가 없잖아요. 한국은 계층의식이 없는 나라에요.
변 = 그렇다면 공영방송의 존재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상업성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는 티브이,그런 걸 원하는 시청자들이 분명 있는데….
전 = 티브이에 목숨걸고 봤던 그런 계층은 사라졌어요. 지금은 대신 아주 익숙한 계층들이죠. 그 계층도 이 또래지 10대, 20대에게 티브이는
낯익지 않아요. 그들에겐 채널 단추 누르는 게 클릭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려요. 제가 보기에 공영방송은 보통사람이 접하기 어려운 품위있는
고급정보, 흥미있는 삶의 편린은 제공해주는 게 역할이죠. 예를 들면 갈브레이스가 했던 <비비시> 강의가 그의 명저가 된다든지 하는 것처럼.
변 = 지금은 티브이다, 인터넷이다 나뉘는 게 아니라 티브이와 인터넷이 결합 내지 통합되는 단계에 있어요. 저만해도 컴퓨터로 티브이를 보고. 전
세대 자체도 통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통합되는 원리는 ‘참여’지요. 인터넷이 참여, 티브이는 닫힌 공간이었던 데 비해 계속 새로운
시청자들은 그 닫힌 공간에 도전해 들어간다는 거죠. 그런 참여의식 자체가 티브이 프로에 반영되다 보면 자기 삶이 고양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 = 몇년 전 회자된 키언클로스의 이야기, 티브이·인터넷·전화 등이 통합된다는 얘기는 당연하고. 한국 티브이에서 참여 문제는 전 지금의 방송사
게시판에서 보이는 시청자들의 반응 정도로 충분하다고 봐요. 문제는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하고 이젠 보고 들은 것도 많아 옛날처럼 시청자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거죠. 근데 지금의 티브이는 전과 같은 눈높이에서 초등학교 5학년 기준으로 만들고 그런 것에 발목이 잡혀있으니, 그렇게 시청자를 끌고
나가려는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의도가 제작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변 = <한국방송> 시청자위원회에서 4개월간 활동했는데. 최근 들어 어떤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가지고 제작진들이 프로를 만든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층이 나뉘어지는데 보도·교양 쪽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억눌려왔다고 생각해요. 만들어야 할 것을 정권에 의해 억눌러왔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의
노정권에 발맞춘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들이 막 터져나오는 거라는 거죠. 물론 막 터져나오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제작의지와 문제의식은 평가해줘야 해요. 오히려 예능·드라마야말로 계속 잠자는 분위기에요. 이런 부문간의 괴리가 있으니 전 아까 말한 걸
보도·교양과 드라마·예능 이런 식으로 나눠 얘기해야 한다고 봐요.
전 = 텔레비전은 하나로 얘기해야 해요. 동시에 한 채널에서 동시에 나오는 게 아니라, 편성이란 띠를 갖고 있고, 그 편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건
시대적 성격과 함께 중요해요. 또 시사 교양은 살고 드라마는 죽고라 하는데 오히려 제가 보기엔 최근 몇 년째 대형 시사기획물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한때 대하 다큐멘터리가 회자되던 때가 있어요. 지금은 기껏해야 <대장금><올인> 정도에요. 봇물 터지듯 하니까 미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하자가 있는 건 있을 수 없어요. 타이어가 펑크난 차는 아무리 차체가 좋아도 안 되는 거에요. 그런 점에서 시사·교양에 방송사가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하죠. 내가 보기엔 명맥 잇는 건 <피디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 정도인데, 지금 제대로 인터뷰를 하는 능력 가진
피디, 기자들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죠. 요즘 보면 인터넷에서 나온 가공된 정보 이만큼 자료로 뽑아갖고 거기서 모든 취재나 기획을 시작하는데,그건
이미 통제되고 죽은 정보에요.그렇기 때문에 정보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능력을 가져야 해요.왜 스타 기자가 없고 특종 기사가 없는가,이건 모두
인터넷에 기대고 있는 제작진의 관성이라고 봐요.
변 = 기자와 피디의 자질 문제는 이렇게 봐요. 예전엔 특권이 있었는데 정보시대에선 그게 다 허물어졌잖아요. 자기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경쟁사회엔데 거기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거죠. 전 시사교양물도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이전처럼 고발성 뉴스를 다루기엔 정보화시대엔 숨은 정보
찾기도 힘들죠.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걸로 다가가야 하죠. 무엇보다 21세기 시사교양물은 시민 참여프로그램이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민들을 끌어들이냐는 게 관건인데 그 점에서 <생방송 시민 프로젝트 나와주세요> 프로그램은 참 아쉬워요. 좌절됐지만 그런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야기는 방송사의 보도 프로그램, 뉴스로 흘러갔다. <와이티엔>이 최근 시도한 ‘돌발영상’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인다는 데 쉽게 일치했다. 하지만 의외의 차이는 ‘여성앵커’ 문제에서 나왔다. 대담 전에 ‘이 부분만은 전여옥씨와 의견이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던 변희재씨는 전여옥씨와 이야기하며 “놀랐다”고 말했다. 전씨에게 여성앵커의 문제는 방송사 보다는 “시청자의 의식의 문제”였다.
변 = 전 <와이티엔> 보면서 가능성을 많이 보는데. 돌발영상도 있고, 기자와 앵커가 즉석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이런 걸 보면 인력 부족하다
하지만 방송 3사가 저인만 차리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 = 동의하지만, 그건 편성의 문제도 있어요. <와이티엔>의 가장 큰 힘은 24시간 뉴스를 갖고 있는 거에요. 방송사는 편성권을 피디가 갖고
있죠. 우리 생각에 방송기자가 대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방송기자들은 방송사 내에서 돈을 쓰는 집단이지 돈을 버는 집단이 아니거든요.
‘돌발영상’은 재미와 흥미, 메시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인데 <한국방송>이 본 떠서 하는데 똑같은 현장을 보여줘도 와이티엔이 보여주는
그런 영상이 부재하더라고요. 그건 일단 티브이에 대한 인식을 못해서에요. <한국방송> 사장부터. 그분은 신문사 출신이잖아요.전 기본적으로 방송사
사장은 방송사 출신이 가야지, 신문에서 가면 실패하게 돼 있어요.닉슨이 케네디에게 패한 건 티브이를 라디오에 그림 입힌 거라 봐서 패한 거에요.
이 양반들도 신문에다 오디오·비디오 입힌 게 티브이 뉴스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거든요. 카메라 기자에 대한 예우라든가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희망 이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대충하고. 카메라 기자의 능력이 보여지지 않는 티브이라는 건 라디오지, 티브이가 아니에요.
변 = 전 사장의 문제는 아니라 봐요. 에스비에스는 방송사 출신이라고 뉴스가 더 나은 건 절대 아니잖아요.
전 = 에스비에스는 민방이니까. 결국 돈을 많이 들여야 좋은 게 나와요. 근데 에스비에스는 드라마·오락에 돈을 많이 들여요. 그렇기 때문에
방송사 사장의 생각이 더욱 중요한 거죠.
변 = 제 말은 뉴스 포맷이 신문사 사장이 와서 갑자기 만든 게 아니라, 이제까지 반복되온 포맷을 바꾸지 못했다는 겁니다. 제가 뉴스에 갖는
불만은 이런 거죠. 어떤 방송사 기자가 “도대체 실력을 왜 쌓을까 회의도 든다”며 “내가 시에프 감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포맷에 물고오면 데스크가 결정하고. 앵커도 정말 실력있는 사람 앉혀봐야 차이가 있겠냐는 거에요. 뉴스 전체를 뒤흔드는 개혁이
필요한 때인데.
전 = ‘내가 시에프 감독이냐’, 숫제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죠. 이건 기사를 쓴다기 보다 제한된 시간에 메시지를 주는 거에요. 물론
이해해요. 더많이 취재해도 군살이 되버리기 쉬운 게 방송의 운명이죠. 딱 세마디 이상 취재할 필요도 없는 것 알아요. 하지만 거기에 안주할 게
아니라, 좋은 단편을 쓰기 위해 대하소설 도전해야 하는 것처럼 1시간짜리 기획이나 대형 프로그램 같은 데 자원을 해서 자기훈련을 쌓아야 하죠.
변 = 사실 여성앵커 문제도 이런 데서 나와요. 뉴스 포맷이 이런 수준이니까. 40대 남자에 20대 초반 여성이죠. 근데 <조선일보>에 쓰는
방송칼럼엔 그런 말씀 잘 안 쓰시더라고요?
전 = 내가 보기엔 그런 것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주말뉴스에선 나이차가 크게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이제까지 나이
든 여성이 등장했다가 실패를 많이 했어요. 이건 한국의 시청자 문제일 수 있어요. 전 그렇게 봐요. 방송사 문제가 아니라. 점점 이미지 시대가
되고 있잖아요. 성형 공화국이고, 이런 데서 뉴스 앵커를 아줌마를 내세우면 시청률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에요. 시청자들이 티브이에서 굉장히
‘꽃’을 보기 바라더라고요. 그래서 현실을 도외할 수 없고 한국에서 여성이 아줌마, 할머니가 아니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앵커의 위치도 바뀔 거라
봐요.
변 = 좀 놀랐는데요. 그리고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라 들었는데….
전 = 전 아니에요. 전 굉장히 실용주의자에요. 프랙티컬하고.
변 = 전 아줌마, 할머니를 앉힌다는 말 자체가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40대의 매력있는 기자도 있을 수 있잖습니까. <대장금>의 한상궁역을
한 양미경씨가 42살이죠. 그렇게 편견이 무너져내려가고 있다고 봅니다. 왜 우리는 여성의 매력을 어린 아가씨에서만 찾으려는 건지.
전 = 그게 시청자의 문제라니까요. 한국에선 마흔 넘으면 다 아줌마잖아요. 40대 여성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갖고 그것이 현실화 됐을 때 여성의
말도 듣고, 여성의 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화면에서 시청자들이 스스로 인식할 때 그게 가능하다는 거죠. 방송사가 앞서가기엔 너무 모험이에요.
양미경씨 얘기도 했지만 그이는 탤런트고 사실 30대 초반 얼굴이에요. 정말로 생활의 고뇌로 주룸이 너댓줄 있는 여성앵커들이 나와 눈 치켜뜨면서
싸우듯이 하는 외국 앵커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어렵다는 거에요.
변 = 정치적으로 보면 추미애나 강금실 장관이 조사했다 하면 인기있는 정치지도자인데, 이런 식이라면 지금쯤 방송사가 상징인 9시 뉴스에서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전 = 이랬으면 좋겠어요. 둘둘이 나오는 시스템 말고. 프랑스에서 월수금·화목토를 남자와 여자가 나눠서 해봤는데 나이든 여자가 엄청 인기를
끌어가지고 나중엔 프로그램을 주도했거든요.
이런 자리에서 ‘한국방송 수신료’ 문제가 빠질 순 없다. 지금까지 얘기해온 공영방송의 성격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근데 돌발상황 발생! 전여옥씨가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나온 것이다.
전 =수신료,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데.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고 봐요. 공영방송은 매우 다양한 계층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전
수신료보다 한국방송이 빨리 쪼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2TV는 에스비에스와 경쟁하죠. 1TV의 성격은 매우 모호하고. 빨리 2TV를
떼내보내고 1TV만 갖고 진지한 공영방송을 해야 한다고 봐요.
변 =일단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가 한국방송에 대한 불만을 가진 계층, 즉 밑의 시청자로부터 문제가 제기된 게 아니라 한나라당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논쟁의 성격을 보여주는 거죠.
전 = 꼭 그렇진 않아요. 난 다양하게 사람 만나는데 나이든 분들이나 지방, 일부 지역에선 불만이 상당히 커요. 결국 정치란 건 뭐에요.
사람들에 어떤 현상이 보이면 그걸 뽑아내 전염시키는 게 정치에요. 그래서 이게 하향식이라 말하는 것도 편견이에요. 그냥 그런 일이 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수신료 문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해야 되죠.
변 = 설사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회에 바로 올라가 있는데. 그건 다른 문제거든요. 불만이 있으니까 좀 시정해달라는 것과 바로
분리하겠다고 정책적으로 들어가는 건 한나라당이 주도한 거죠. 재정압박 문제도 있고. 물론 2TV 민영화에 찬성하면 전혀 얘기가 달라지는데.
전 = 전 찬성이에요. 그래서 생각이 달라 별로 언급하지 않고 싶다는 거에요. 한국방송이 거대화되어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안 되는 거에요.
변 =<비비시>는 8개의 채널을 갖고 있어요. 드라마도 제작하고. 제가 갖고 있는 2TV 관은 실험적인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 시청률 면에선
실패를 많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작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면이라면 오히려 수신료를 현실화시켜서라도.
전 = 그건 얘기가 안 되죠. 권력은 분산되어야 평등이나 공정한 게 생기는 건데 한국방송이 이처럼 거대한 집단이라는 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잖아요. 권력과 인적자원을 독점하고 있어요.
변 = 채널 2개가 권력이라기 보다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문제죠. 이번에 ‘K2 프로젝트’라며 상당한 노력을 했는데 평가는 어떠세요.
전 = 뭐 달라진 게 있나요. 어디에선가 시청률 낮아진 게 달라진 것 아니냐는 글을 봤는데 정말 기가 막힌 발상이죠. 한국방송은 본연의 자세를
가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해야 해요.
변 = 6천명은 너무 거대한 몸뚱이죠. 기본적으로 한국방송은 콘텐츠 회사인데, 콘텐츠 담당자인 기자나 피디에 비해서 다른 행정이나 업무조직이
너무 비대해요.
전 = 사람이 많은 문제는 아니에요. 6천명도 꼭 많다고 볼 순 없어요. 문제는 질이 낮다는 거죠. 지금은 경쟁의 시대고, 공영방송은 미국의 <피비에스>같은
방식이 바람직하지 국민세금으로 수신료 받아가면서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얼마전 맥도널드 미망인이 <피비에스>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고 유산을
기증했잖아요. 그 정도로 평가를 받도록 한국방송도 성격 어중간한 2TV를 떨어버리고 컴팩트하게 가야 돼요.
변 =<피비에스> 얘기를 했는데 이번 이라크 전에서 보듯이 미국 방송은 다 보수화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공영성의 결여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엔에치케이>나
<비비시>처럼 수신료 형태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전 =글쎄요. 우리나라에서 볼 떄 <피비에스>가 보수화됐다고 보지만, 자국의 이익에서 보면 그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변 = 이라크 예를 들었지만 계급적인 문제의 보도를 봐도 굉장히 보수화로 가고 있고.
전 = 한국방송도 좌향좌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변 = 계층이 낮으면 좌향좌인가요.
전 = 그런 건 아니고. 최근들어 나온 송두율 보도나 이런 부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아요. 침묵하는 다수에도 귀기울여야 한다는 거죠. 정부보조는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보지만, 지금같이 한국방송이 전기요금에 얹혀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는 건 문제가 있어요. 수신료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건 굉장히 정치적인 거고 한국방송이 자초한 면도 있고. 자꾸 이런 얘기하면 그냥 저 갈래요.
대담자가 싫다는데 계속 물고 늘어질 순 없었다. 이야기를 신문과 인터넷 쪽으로 돌렸다. 신문에 글들을
쓰고 있고, 인터넷에서 많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논객들이기도 한 이들은 ‘인터넷 언론 대세론’을 펴갔다.
전 = 신문은 좀더 전문화의 길을 가야 한다고 봐요. 매우 특정적인 이슈, 신문의 성격과 개성 발휘하며 특정한 계층을 타깃하는 시대가 됐다고
보죠. 특히 종이신문은 역할은 10년 안이면 끝날 것 같아요. 오히려 그보다는 인터넷 신문의 가능성에 큰 의미를 둡니다.
변 = 10년이라고요? 전 5년 정도라 보는데…. 이건 산업구조적인 면에서 무가지가 들어오며 흔들리는 측면도 있지만 논조의 측면도 있어요.
<조선일보>가 밝히는 부수로 보면 정말 전세계적인 매체인데 그 매체가 한쪽으로 끌고 가니까 다른 쪽도 다 흔들렸다고 보고 그것이 이제 신문이란
매체 전체의 흔들림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전 = 전 시장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사람들은 누구에게 가리키거나 강요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지금 신문 구독층은 알아서 돈
내고 사보는 거잖아요. 그럼 아주 철저한 것 아니에요. 선택권이란 건 굉장히 변치 않는 거에요. 또 종이책에 대한 관성, 미련 같은 것도 있고.
그래서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고 다만 종이신문은 매우 좁은 전문적인 이슈 페이퍼로 남을 것이고, 그 역할은 인터넷이 대체하지 않을까 봅니다.
변 = 인터넷도 문제는 커요. 전 사실 그것도 종이신문에서 파생된 문제라 보는데. ‘안티조선’ 예에서 보듯이 한쪽이 한 방향으로 나간다고 반대로
안티와 안티가 반복되는 구조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전 = 사실 <조선일보>도 안티조선 덕 봤고, 안티조선도 <조선일보> 덕 본 것 아니에요? 마치 조순형과 추미애처럼 흥행몰이에 성공한 거고. 난
관심 없고요. 내 관심은 다매체 시대니까, 각각의 매체에 대한 흥미가 있는 거에요. 물론 못 쓴 글 보고 ‘댓글 수준이다’라는 말을 하듯
네티즌들의 댓글이 아직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만일 그 댓글이 매우 지성적인 사람·생각 깊은 사람에 의해 쓰여진다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포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고 진짜 민주주의 이상에 근접해갈 수 있다고 봐요.
변 = 안티조선의 출범때 문제의식도 그랬지만, ‘시장의 힘’이라 얘기하기엔 한국의 신문 시장은 정상적인 원리가 작동하는 곳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지난 5년동안 <조선일보>의 시장에서의 힘은 별 변화없을 지 모르지만, 정치적 힘은 크게 줄었어요. 예전엔 최장집도 몰아낼 수 있었는데 이젠
안되거든요. 이건 ‘안티조선’의 힘이었다고 봐요. 근데 5년 전과 달리 이젠 신문 산업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거든요. 인터넷이 크게 성장해서
앞으로 종이신문보다 훨씬 나은 수익구조를 낳을 수 있고. 지금부턴 이 시장경쟁 체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 = 정치적 힘이 줄어들었다는데 그건 안티조선의 힘이라기 보단, 세상이 달라진 거에요. 물론 자전거 나눠주는 것 불공정하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룰이라는 건, 항상 우리가 얘기하는 것처럼 규칙이라든가 그런 걸로 100% 되는 건 아니죠. 전 그냥 시장이라고
간단히 봐요. 부자에게 배우자라는 열풍이 있듯, <조선일보>도 배울 점 있는 신문이에요. 좀 쿨하게 봤으면 좋겠어요. 큰 눈으로 보면 심플하게
볼 수 있거든요. 그래야 빠른 해결책, 합리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죠. 내가 특별히 <조선일보>를 사랑하는건 아니고 그 신문이 갖고 있는
영향력, 그거를 사랑하죠. 그래서 거기에 쓰는 거에요.
전여옥씨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갈등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의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도 그 기준에 충실한 것이다. 전씨의 ‘쿨한 논리’ 속에서 균형이나 평등의 문제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지면이나 인터넷에 맹렬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변희재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른바 ‘논객’의 역할을 근거로 전씨를
공격했다.
변 = 매체의 문제인데…. 왜 <조선일보>에 쓰냐. 전선생이 말한 대로 영향력이에요. 근데 사실 이게 힘의 논리일 수 있거든요. 매체 입장이죠.
누가 신뢰성 있고 공정하냐 보다는 누가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느냐는.
전 = 난 가리지 않고 다 써요. 일간지가 아닌 아주 작은 매체에도. 그러니까 <조선일보>엔 쓰지 말자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조선일보>의
영향력, 그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라는 거죠.
변 = 프랑스 지식인들은 당파성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매체를 가려서 씁니다. 근데 왜 한국에선 그게 안 통하냐. <조선일보>의 권력 때문이에요.
전 이른바 ‘논객’이라면 매체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 매체를 가리는 건 전 글 쓰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변 = 전 글쓰는 사람이 매체를 끌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 글쓰거나 춤추는 사람은 어디에나 쓰고 어디서나 춤을 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콘텐츠나 예술을 고급무대에서만 쓸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변 = <조선일보>에 반하는 주장을 쓸 순 없잖습니까.
전 = 전 쓰기도 해요. 예전에 <조선일보> 비판도 많이 했어요.
변 = 비판수용 바운더리가 있죠.
전 = 비판수용 바운더리가 있다면, 그런 측면은 반 조선일보의 매체도 그것 못지않게 심각하게 있다고 봐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차를 한잔 마시는 사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전여옥씨는 변희재씨의 나이를 묻더니
“좋은 나이네”라 했고 “30대 땐 몸을 챙기고 자신을 훈련하고 공부하는 시기”라 강조했다. 인생선배의 상담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이야기가 신랄하게 이어졌다. 정치에 대한 일반적 생각도 엇갈렸다. 줄이느라 고생했다.
전 = 저보고 왜 노무현 대통령만 비판하냐는 말 많죠. 저도 한나라당이 결점 많은 당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밥상을 두 번이나 다 차려줬는데 못
먹은 당인데, 자진해산하라 해도 할 말 없죠. 하지만 한나라당은 권력이 대통령 만큼 없잖아요. 노 대통령만 잘하면, 굉장히 정국이 스마트하게
풀려갈 수 있는데 너무 원시적인 거죠. 여소야대는 미국에선 체질이에요. 그렇다고 미국에서 재신임 투표나 야당대표 단식 같은 얘기가 나오나요?
한나라당 문제가 많은 것 알지만, 한나라당에 쓸 그것보다는 대통령에 대해 쓰는 게 훨씬 사회적으로 볼 때 변화가 빨리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사실 전 지난 대선에서 ‘반노무현’보다는 ‘반이회창’ 감정이 강했던 사람이에요. 어쨌든 노 대통령이 됐을 때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래도
지금 우리는 변화를 수용해야 하고, 세상을 한번 뒤집어봐야겠다고 했죠. 근데 너무 어설프니까. 다 주어진 상황에서만 한다고 하는 건 능력 있는
사람 아니에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뭘 해야지, 리더라 부를 수 있는 거죠.
변 = 노무현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의 실망이 더 크겠죠. 저도 그런 범주에 들어갈 지 모르지만. 근데 관점을 달리 봐요. 지난해
같은 경우 노무현은 개혁의 아이콘이었잖습니까. 이 사람 바뀌면 다 바뀐다고 본 거죠. 그러니까 ‘구조’가 아니라 ‘인물’에 집중되어서 진행된
거고. 그런데 반대로 노 대통령만 정신차리면 되는 문제냐. 국회의원 구조, 관료제 구조, 대언론 문제 등 험난한 문제잖아요. 안타깝지만 전
심하게 비판을 안 해요. 어차피 5년을 할 건데 대통령이 제자리 오개 하고, 구조를 바꿔내기 위해 지지세력이 뭉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이 실패하면 서민들이 망하는 거에요. 논객들도 비판이나 열광만 할 게 아니라 끈기를 갖고 구조를 봐야죠.
전 = 대통령은 어린애가 아니잖아요. 대통령이란 자리는 끊임없는 비판 속에서 단련되어야 하는 존재에요. 구조 얘기하지만 대한민국 만큼 대통령이
이렇게 막강한 권력 가진 나라가 없어요. 대통령에 앉아 이 정도로 밖에 못하는 건 개인의 자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봐요. 그러나 저 역시
대통령이 잘하길 바라는 거에요. 그래서 비판하고요. 내 글을 통해 대통령의 모자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고, 국민들이 주의해야 하는 거에요.
정치적인 야심 같은 것도 전혀 없으니까 쓸 수 있는 거죠.
변 = 냉철하게 보면 노무현식 리더십인데…. 저도 실망감도 있지만 장점도 있어요. 수틀리면 버릴 수도 있다, 기득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검찰 수사가 이 정도까지 나갈 수 있는 거고.
전 = 과연 검찰수사가 공정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인가도 그렇고. 노 대통령이 그랬잖아요. 자기를 파는 주변 사람 있으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그건 엎지 말아야죠. 그건 자기의 장점을 스스로 엎은 거에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 자리도 던질 수 있다, 초개처럼 버릴 수 있다는 건
대통령으로서 위험한 의식이에요. 아무리 비난 받아도, 거기서 꾸준히 일해야죠. 전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 선택했고 그걸 존중해요.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이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좀 ‘도덕론자’로서의 자세 같은 걸 벗어나 ‘대통령 노무현’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변 = 어찌됐든 전 정치가 정말 봉사할 만한 사람이 하는 시대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삶에 기반한 정치가 되려면 특출한 사람이 아니라 남을
돕고 싶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죠. 유럽처럼 어린 나이에 당원 되어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전 = 전 기본적으로 정치가 ‘사양산업’이라 생각하니까 개인적인 관심은 없지만, 단기간 적으로 한국사회에선 진짜 사회의 중요한 엘리트들이 정치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라는 비즈니스도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도록 굉장히 풍요한 시장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그런 면에선 세비도 올려줘야
하고.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재경부나 대기업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봐요. 그들은 그 누구보다 세계의 변화를 가장 잘 꿰뚫어보고 있어요.
이런 사회 각계의 뛰어난 사람들이 백이나 끈 없이도, 정치에 들어갈 수 있는 오픈 시스템으로 바뀌어야죠.
변 = 재경부를 보면 관료주의가 보여요. 전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벤처 기업인이라 보는데, 그런 쪽에서 보면 지금의 정치판은 관료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이라 보겠죠. 정치인도 처음부터 정당 들어가 당활동을 하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치인이 되어가야죠. 지금처럼 정치가 특권이니까 밖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특권 노리고 들어가고.
전 = 정치는 자원봉사나, 명예도 아니라고 봐요. 사회변화 바라는 사람, 그 판에서 자기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죠.
전여옥씨는 한때 ‘테러리스트론’을 들고 나오며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로 보이기도 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프랙티컬한 사람’인데 오해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던 전씨는 몇 년 전 저서에서 “나는 21세기 들며 분노와 남성에 대한 적대심과
이별했다”고 썼다. 나아지고 있다곤 하나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은 사회에서 전씨의 말은 ‘성공한 여성의 개인적 선언’처럼 읽히기도 했다.
여성문제에서부터 이야기의 마무리는 이들 둘이 모두 애착을 갖고 있는 인터넷의 문화로 귀결됐다.
전 = 내가 뭐 페미니스트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전 원래 남자 싫어하지 않아요. 전 다만 여성이란 성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당했던 측면을 인도주의적 면에서 문제제기를 한 거죠. 근데 21세기 한국사회에선 남녀 차이가 없어졌다고 봐요. 한국여성들이 교육이란
면에선 상당히 혜택 받은 집단이죠. 대학을 다 보내고. 그걸 다 쓰지 않았던 기이한 나라였죠. 하지만 그런 게 하나하나 쌓여 지금은 액티브한
역할 하고 있다고 봐요. 94년에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책을 쓰고 거의 10년인데, 이젠 매체에서 ‘통합의 시대’라 얘기했듯 젠더도
통합되는 시대로 봅니다. 제가 뭐 개인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이건 단순 희망도 아니고 현실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거죠. 물론 여성할당제 같은
건 필요하다고 봐요. 구조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속도를 좀 빨리 하면 더 득이 되겠죠. 거꾸로 299명 국회의원 중 16명이 남성이라
생각해봐요. 남성들에게 얼마나 큰 쇼크겠어요? 그런데 여성장관이 “4명이나 된다”고 말하는 식은 사회발전에 저해되는 거죠.전 여성들도 미국의
백악관 플랜 처럼 이념이나 이런 것 관계없이 30명 정도 뽑아 그들을 키우고 지원하는 데 찬성이에요.
변 = 아직 잠재되어 있는 상태죠. 저희 사이트도 보면 들어오는 사람들의 20%는 여성이거든요, 근데 글을 올리는 사람들로 하면 99대
1이에요. 특히 정치칼럼 사이트에서 심각하게 차이가 나죠.
전 = 그 수치는 의미심장하네요. 전 요즘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심각하고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인터넷 온라인이나 티브이에까지 올라오는 여성과
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 포르노 산업이 발전한 계기가 베트남 전쟁이거든요. 그전엔 성욕 증진 이런 거였다면 그때부터 강간, 폭력, 항상
여성을 학대의 대상으로 보는 포르노그래피가 나타났어요. 그게 일종의 전쟁성의 추악한 한 면인데…. 요즘 인터넷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포르노그래피나 댓글 중 성적인 비하 같은 건 인터넷의 가장 위험한 요소라 봐요.
변 = 여성이 글을 쓰면 비판글에 언제나 성적인 표현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럴 땐 힘을 가진 이가 권력 쥐는 원시사회의 모습이 지금 인터넷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여요.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말곤 룰이 없어요. 마음껏 언어폭력 쓰고.
전 = 아직 여성의 글은 티브이의 시청자 게시판 오빠부대나 여성포털 정도인데, 점점 여성들도 인터넷에서 쇼핑몰에 들르는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글을 써야죠. 근데 이건 낙관해요. 어쨌든 접속률은 세계수준이거든요. 한국여성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얼마나 당연히 가져야 할
권력을 쟁취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매체에서의 성의 평등도 다양한 매체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 보죠.
변 = 인터넷의 붐이 인 계기는 사실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컸거든요. 주도한 건 정치사이트였고. 지금 인터넷의 정치는 정치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을 놓고 스포츠 구경하는 듯한 관심의 과잉에 문제가 있어요. 지금 인터넷의 정치과잉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인의 싸움을
보는 노예의 과잉이에요. 이게 아니라 정치가 문화와 결합한, 즉 내가 이걸 하고 싶은데 정치권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참여의 정치가 된다면 그게
곧 넓은 의미의 문화고, 그럴 때 여성의 참여폭도 커질 거라 봐요.
정리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 사진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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