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지령 20호 맞은‘강준만 교수’ (2001. 10. 19. 한겨레)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펴내는 계간 <인물과 사상>이 지령 20호를 맞았다. 강 교수 개인이 거의 대부분의 원고를 집필하는 계간지가 ‘합본호’ 하나 없이 꼬박 5년 동안 발간된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 잡지는 ‘인물’을 다룬다. 지난 5년 동안 이 잡지에는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작가 등 130여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이전엔 대체로 누굴 비판하더라도 익명으로 거론하는 게 상식이었다. 강 교수는 이를 “침묵의 카르텔”이라 비판하며, 실명을 거론하는 인물비평이란 새로운 장르의 글쓰기를 만들어냈다. 조용하던 한국 지식인 사회에 성가시고 맹렬하고 원기왕성한 ‘등에’ 하나가 날아든 셈이다.

강 교수가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고 전화조차 팩시밀리로 연결해놓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본지의 인터뷰 요청도 그는 메일을 통해 딱 잘라 거절했다. 지난 16일 무작정 전주의 전북대로 찾아갔을 때, 그는 ‘매스컴과 사회’란 제목의 두 시간짜리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 앞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지식인의 매체 이용을 그렇게 비판하는 내가 어떻게 일간지에 얼굴을 내밀겠느냐”고 가볍게 ‘저항’했으나, “<한겨레> 독자의 알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에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7시간 동안 이어진 짧지 않은 인터뷰 내내 강 교수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 논지를 전개했다.

자신은 ‘운동가’가 아니라고 했는데.

=시민운동은 개인의 노력과 시간을 희생하는 운동이다. 난 그렇겐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운동이 있다면 <인물과 사상>이나 ‘오 마이 뉴스’, <아웃사이더> 같은, 기존 거대매체가 외면하거나 무시한 이슈를 제기하는 매체를 하나 봐주는 그런 운동이다. 이런 작은 매체들이 자생력을 확보하면 수구 언론의 지배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선정적 선동적 표현과 인신공격에 가까운 글쓰기가 글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고 보지않는가.

=인정한다. 그러나 내 글은 대화를 전제로 한 글쓰기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운동을 하려면 비판보다 ‘설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난 운동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지식인의 추한 몰골을 응징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군사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자기 말을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면서 처신해온 사람들이 아무런 응징도 당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응징을 통해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자는 거다. 우리는 이미 정치인이나 재벌, 관료에 대해서는 ‘국민’의 이름으로 맹렬한 풍자와 독설을 퍼붓고 있다. 대통령에 대해 별별 표현을 다 동원하고, 의원을 조롱하고, 재벌을 야유하지 않는가. 이런 비판은 좀 지나친 말투를 동원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숨쉴 구멍이란 논리로 허용된다. 그러나 유독 문화계 지식계 인사들은 끝내 자신들만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기가 상해도 안 되고. 정계 관계 재계와 지식계가 다를 건 없다. 재미의 규모가 좀 적을지라도 면책특권을 누리며 세세토록 재미를 봐온 건 오히려 문화권력 지식권력이다. 전두환 노태우는 감옥 갔다 왔지만, 그때 그들을 옹호하고 찬양한 지식인 가운데 누가 부끄러워하기라도 했나. 이 영원한 성역을 깨고 응징의 문화,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자는 게 내 작업이다.
　

그런 글쓰기에 넌더리, 달리 말하면 일종의 ‘면역’이 생겼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응징의 효과도 반감하는 것 아닌가.

=고정관념 때문에 내 글의 독자가 더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걸 나도 안다. 지금까지 내 비판을 받아온 사람들은 나보다 ‘급’이 높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앞으로는 좀 달라질 거다. 난 내가 60대가 되더라도 20대 30대와 치고받을 거다. 그때 가면 나에 대한 비판이 상승곡선을 그릴 거다.
　

당신이 행해온 지역주의와 서울대 학연주의 비판에 대해, 서울대 출신이 아니고 지방대 교수이기 때문에 ‘한풀이’ 차원에서 나온 거라는 비난이 있다. 당신은 ‘한풀이’를 긍정하는 논리를 펴는데, 보편성을 얻지 못하면 부정적인 면도 있는 거 아닌가.

=내 작업은 우연의 산물일 거다. 지방대 교수로 있다보니 그런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 거다. 한풀이 맞다. 그게 뭐가 나쁜가. 내부 고발자들도 보면 대개는 잘 나가다가 걸림돌에 걸렸을 때 문제를 제기한다. 동기야 어쨌든, 그의 주장에 내적 일관성과 지속성이 있다면, 한풀이에서 시작한 일이더라도 봐줄 수 있는 거 아닐까. 한풀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저항세력이 죽는다. 아웃사이더나 패배자로 그냥 살 수도 있지만, 거기에 주저앉지 않고 개인의 문제의식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시킨 일을 아름답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인물비평이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은폐하는 면이 있지 않나.

=난 인간이 바뀌어야 다른 것도 바뀐다고 본다. 가령 백낙청 교수의 생각이 바뀌어야 창작과비평사가 바뀌는 거다. 그런데 ‘백낙청 사단’의 ‘문학권력’을 비판하면, 그의 ‘분단체제론’을 비판해야지 왜 알맹이 없는 비판을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논리는, 김대중 정권의 가신-보스정치를 비판했더니 김 정권의 ‘통일정책’을 비판해야지 왜 지엽말단적인 사소한 문제를 건드리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분단체제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난 분단체제론 연구가 100건 나오더라도 지금 당장 남북 현안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본다. 북한에 쌀 보낼 때 한나라당까지 동의해도 <조선일보>가 딴지걸고 나서니까 어려워지지 않던가.
　

<인물과 사상> 19호에서는 인물비평에 일정한 한계를 느낀다고 쓰지 않았나.

=인정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인물비평과 달리 어떤 테마를 잡아서 쓰는 글도 병행하려 한다. <인물과 사상> 21호에서 한국문학판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분석해보려 한다. 이를 위해 최근 문학관련 서적과 잡지 3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논적이 가장 많은, 따라서 오해를 가장 많이 사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가시돋친 눈길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만, 자기 작업에 대한 사명감 또한 분명하다.

“나보고 ‘신문쪼가리나 보고 글쓰는 사람’이라 폄하하는 걸 알고 있다. 나 그런 사람 맞다. 왜 그러느냐. 심오한 학술논문은 몇백 명밖에 안 읽지만, 신문 칼럼은 몇십만 명이 읽는다. 난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주/글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사진 서경신 기자 rao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