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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사람을 만나는 것", "그 끝에선 자신을 만나죠"
　

: 한비야 씨와 토니 휠러, 두 여행가가 만났다.

세계적 배낭여행가 토니 휠러, 한비야씨와 만나다

토니 휠러(57)는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전설’로까지 불리는 여행가다. 영국에서 났지만 어린시절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26살이던 1972년 아내와 함께 영국을 떠나 중동, 동남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는 배낭여행을 했다. 그들이 시드니에 닿았을 때 지녔던 건 단돈 27센트. 그 여행담을 담아 묶어냈던 책이 바로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현재 <론리 플래닛> 시리즈의 첫 책이 되었다. 론리 플래닛 여행출판사의 설립자이자 여행작가로 휠러는 전세계 100여개 나라를 여행했다.

한비야(45)씨는 두 발로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돈 여행가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잘 나가던 회사에 ‘무작정’ 사표를 던진 건 어려서부터 꿈꿨던 세계 일주를 이루리라는 ‘작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세계 오지를 찾아 떠나는 7년여에 걸친 여행에서 삶의 또다른 길을 만났다. 세계 89개 나라를 걸어서 누빈 그가 그 긴 여행에서 찾은 길은 세계 곳곳의 절박한 구호현장으로 달려가는 것. 그는 이제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다. 그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월드비전 국제본부 프로젝트 매니저 자격으로 14일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으로 떠난다. 석달 동안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금 등으로 전후 이라크 사람들에게 식수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전쟁 뒤에 남은 건 더러워지고 오염돼 버린 물. 사람들은 물이 없어서 죽어난다.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된다.

동양인과 서양인, 여행출판 사업가와 난민구호 운동가로 현재 선 자리는 다르지만 그들은 여행가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 휠러와 한비야씨가 지난 10일 서울의 한 동네에서 만나 ‘대담 혹은 수다’를 나누었다. 내내 에너지와 활기, 만남이 주는 약간의 흥분과 공감이 흘러넘치는 자리였다. 속도감 넘치는 대화, 한비야씨가 먼저 말문을 텄다.

　

“여행이란 사람을 만나는 것”

“그 끝에선 자신을 만나죠”

한비야=안녕하세요! 당신은 나를 처음 만나지만, 나는 늘 갖고 다니던 여행안내서 시리즈의 작가이자 설립자를 만나게 돼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토니 휠러=안녕하세요!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었다. 영자신문에 난 기사도 읽었다. 기사에서 본 사람을 만나서 기쁘다. 여행을 하다가 엉뚱한 일(긴급구호)을 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너무나 이해가 간다. 구호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당신이 부럽다.

한=감사합니다! 혼자서 오지 여행을 할 엄두를 내게 해준 책이 <론리 플래닛>이다. 이 안내서는 내 도보여행의 좋은 친구였다. 여행이 아니었으면, 오지 여행이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긴급구호 활동)을 만나기 힘들었을 거다.

휠러=그것 보시라, 여행은 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당신이 바로 그런 예다. 당신은 여행지에 개입을 하는 식으로 여행하는 듯하다. 관광하듯 둘러보는 게 아니라 그 여행지에 뛰어드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거기에 조금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 여행은 나만 좋은 게 아니라 그곳 사람도 좋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돕는 것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산이 많은 나라 네팔을 사랑한다. 그런데 네팔엔 안질환이 많다. 여행을 하던 오스트레일리아 의사들이 왜 고산지역(네팔) 사람들이 안질환에 잘 걸리는지를 연구하게 되고, 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여행은 상호작용이다. 여행은 그나라 문화를 잘 알게 해주는 도구다. 당신의 여행(구호활동)도 그런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에 20대 시절에 가보았는데, 여행안내서 집필 계기가 된 곳의 하나다. 당신도 아프간에 가본 것으로 들었다.

한=그 의사들처럼,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1996년 내전중인 아프가니스탄에 갔을 때다. 한 난민촌에서 아이들이랑 한참 재미있게 놀았다. 헤어지려는데, 한 여자아이가 자신들에겐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빵을 나에게 건넸다. 눈이 너무나 까맣고 예쁜 아이였는데, 지뢰 때문에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아이였다. 이 아이가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해서 빵을 주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밤, 난민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휠러! 이름이 재밌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 아닌가.

휠러=내 숙소 맞은편에 있는 봉은사라는 절에 갔을 때 한 스님이 굉장히 불교적인 이름이라고 말해줬다. ‘법륜’이 수레라는 뜻인 것처럼 ‘휠러는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바람의 딸’이란 별명은 무슨 뜻인가

한=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를 ‘바람’이라 하는데, ‘딸’은 귀엽게 부르느라 갖다붙인 말이다. 나는 오지를 주로 여행했다. 한 가족을 만나면 2주고 3주고 눌러 앉아서 그들과 섞이고 만나는 식이었다. 1993년 직장 그만두고 처음으로 장거리 배낭여행을 했다. 파키스탄 북부에 있는 히말라야 힌두쿠시 산맥과 파미르고원이 만나는 곳,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그곳을 참 좋아한다.

휠러=정말 그렇다. 아주 어렸을 적 얼마 동안 파키스탄에서 살기도 했다.

한=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나도 굉장히 많이 받은 질문이다. 왜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이란 무엇인가

휠러=나에게 여행이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타지마할이랄지 그랜드캐년이랄지 인공물, 자연물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진짜 여행의 정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여행을 하게 하는 동력이다.

한=내가 그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웃음)

휠러=당신도 처음에 긴 여행을 했을 때 느꼈겠지만 한번 그런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여행에 중독이 된다. 그 중독은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올 때 알고 있던 지식은 한 세기에 일어날 변화가 30년 만에 일어났다는 정도였다. 실제로 와보니 많은 변화, 특히 제조업분야, 건축물, 혹은 자동차에 나타나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흥미롭다. 특히 한국사람의 정신을 느끼는 것, 그 정신이 전해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저께 시청앞 광장에서 우루과이전 축구를 보면서, 그 열기에 감동했다. 당신은 왜 여행을 하는가

한=나에게도, 여행이란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종국에는 자기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양자택일을 하라고 할 때 한쪽은 타지 마할이고 한쪽은 과테말라의 오지에 있는 가족이라면 아무 주저 없이 두번째 선택을 할 것이다. 여행에서 제일 흥미로운 것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한번은 에티오피아의 어느 지역에 갔더니, 그곳 사람들은 다 발가벗고 있었다. 옷을 입고 있는 내 자신이 발가벗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 삶에서 그렇게 발가벗겨진 느낌은 처음이었다.(웃음) 오지에 가게 되면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여행중엔 늘 예기찮은 일들이 일어난다. 한달이 두달이 되고 석달이 된다. 93년 처음 오지 여행 떠날 때도 3년 예정이었는데 7년이 걸렸다.

휠러=나도 72년 런던을 출발한 뒤 육로를 통해 처음으로 긴 여행을 했다.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를 지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거쳐 시드니로 갔다. 영국을 떠날 때는 1년 계획이었으나 결국은 돌아가지 못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다. 오래도록 여행을 해왔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 방식은 걸어서 하는 여행이다.

한=나도 산악 도보 여행을 제일 좋아한다. 걷기도 하고 산도 보고. 우리나라 남단에서 비무장지대까지 걸어서 종단하기도 했다.

휠러=나는 잉글랜드에서 끝에서 끝까지 걸었는데, 일주일 걸렸다. 종단하는 데 며칠 걸렸는가

한=하루 여섯시간씩 40일을 걸었다.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으로는 갈 수 없었다.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휠러=지난해에 북한 갔는데, 백두산까지 갔다. 백두산에서 중국을 굽어볼 수 있었다.

한, 휠러=(이구동성으로)끝에서 끝까지 가는 도보여행은 정말 좋다!

한=100여개 나라를 여행한 것으로 안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았나

휠러=여전히 안가본 데 많다. 이라크도 안 가봤다.

한=나는 오는 9월까지 그곳에 있을 건데, 한번 오시라.

휠러=꼭 가보고 싶다. 지난해 조지 부시가 악의 축 이야기했는데, 악의 축이라 하니 이라크에 더 가보고 싶더라. 이란에도 갔고 악의 축이라 하니 북한에도 가봤다. 이라크만 가면 된다. 미국이 미워하니까 나는 쿠바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요즈음 한국에 머무르는데, 좋은 소식을 하나 받았다. 한번은 미얀마 오지의 어느 작은마을에 다리를 놓았다. 물론 재료만 제공했고, 다리 자체는 마을 사람들이 놓았다. 그쪽에서 다리를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었는데, 마을 여자가 애를 낳으러 가다가 그 다리 위에서 애를 낳았다는 소식도 있었다.

한=아~, 흥미진진한 이야기군요. <론리…>의 출발이 아시아 여행지였듯이 당신은 유난히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휠러=그 지역을 특별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그 지역이 70년대 당시 큰 규모의 다른 여행 안내서 등에서 외면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 관한 기사 중에, 전쟁이 있고난 다음에는 구호 측면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대목 있었다. 혼돈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두번째 전쟁이 첫번째 전쟁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아프간의 경우도 전쟁 뒤 난민 생기고 혼돈 생겼는데, 그렇게 안 좋은 상태를 겪고 나서, 이라크에서도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이전 경험에서 배우지 않는 것 같다.

한=너도 나도 똑같은 여행서를 들고 다님으로써 특정 여행지에만 몰리는 현상도 있다 유명 관광지가 되면 뒤따르는 환경파괴 논란도 있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때로는 너무 친절한 것 같다. 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게 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갔을 때는 안 가지고 갔다. 때로는 안내서 없이 가는 것도 좋다. 당신도 안내서 없이 간 적 있을 것 같다.

휠러=때론 그렇다. 내가 여행 작가로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 특히 그렇다. 지난해 동티모르 갔을 때 그 비슷한 경험 했다.

한=1993년 오지 여행을 떠날 때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혼자 가기, 육로로 가기, 한곳에 한달 이상 머무르기다.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도 <론리…>를 애용했는데, 내가 보기에 서방의 다른 여행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나쁘게, 혹은 이스라엘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식이 많은데, <론리…>는 객관적이었다. 객관적이지 않은 정보를 소개하면 여행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믿게 된다. <론리…>는 분쟁이 있으면 분쟁의 이유까지도 설명해준다.

휠러=여행 갈 때는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당신도 적어도 한달을 머무르는 걸 원칙으로 삼지 않았느냐. 나의 경우는 1년에 적어도 1주일 동안은 도보 여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번 도보 여행에 적어도 1주일 이상 걸리는 것 말이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에서 일주일 도보여행, 그 전해에는 네팔에서 3주 동안 걸었다. 나는 걷는 여행을 제일 좋아한다.

한=나도 그렇다. 다음에 한국에 한번 더 와서 도보여행을 동해서 서해까지 하면 딱 일주일 걸린다. 그때 같이 가도 좋을 거다.

휠러=한국에 온 지 일주일 지났지만 많이 여행 못했다. 다시 오고 싶다, 꼭 걸어다니고 싶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더 꼽으라면 에티오피아다. 앞으로도, 아마도 나는 늘 여행중일 것이다.

2시간 가까이 나눈 대화가 마무리된 뒤 휠러는 서울의 북한산을 바라만 보다 가는 게 아쉽다고 했다. 전날 그는 비무장지대를 다녀온 그는 한비야씨에게 다음에 오면 비무장지대를 같이 가보자는 약속을 주고받았다. 휠러는 한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시드니로, 한비야씨는 14일 전후 이라크에서 긴급구호 일을 하러 이라크 북부로 떠난다.

　

정리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