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VS 홍상수

/김용주

최근 영화관을 뜨겁게 달군 한국 영화들이 즐비하다. 한국영화가 헐리우드의 그것과 대등한 관계에서 영화관을 휩쓴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유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동안 지속되어온 “조폭(조직 폭력배)”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조금씩 밀려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이후로는 평론을 할 만한 영화들이 달아서 극장가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나는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감독’의 것인지에 비중을 두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권택과 홍상수는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최근 나란히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영화 “취화선”과 “생활의 발견”을 내어 놓았었다.
평론가들은 일상의 의미를 조명했다는 등, 여러 가지로 홍상수의 색깔에 무게를 싣는다. 물론, 홍상수의 영화는 특이한 맛이 있다. “강원도의 힘”은 영화촬영 시 대부분의 감독들이 신경 쓰는 세트장과 음향의 개념을 허물었다. 세트장 없는 야외에서 오만가지의 주변 소리들이 섞여있는 “강원도의 힘”을 보았을 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건조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면서도 내심 신선함을 느꼈다. “오! 수정”의 흑백 화면처리와 동일한 상황을 두 번 촬영하여 얻는 효과, 그리고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다른 사람의 말들…

무엇보다 지나치게 인간사(人間事)를 미시적으로 파헤치는 그의 시각은, 영화를 보는 내내 현미경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본 후 그것을 여과 없이 스크린에 담아낸 듯 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신선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관이 싫다. 아니, 그의 세계관이 싫다. 그에겐 모든 것이 형이하학적이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정도랄까. 영화 속 인물이 교수이건 학생이건, 어떤 사회에 어떤 시대에 몸담고 있건, 결국 사람은 직장을 얻어 먹고 사는 문제, 남녀관계에서의 육체적 사랑, 질투심 따위만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귀결된다. 이는, 마치 모든 생물들과 온 세상의 물질들이 결국에는 원자와 분자들의 운동으로 귀결된다는 환원주의적 시각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인간은 태생적으로 원초적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먹고 사는 문제, 남녀 간의 사랑, 질투심, 돈, 집, 직장.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실제로 우리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이며,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하찮게 여기지만 무의식 속에는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임을 홍상수의 현미경 같은 카메라는 꼬집어 드러낸다. 사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본질적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과 함께.

임권택의 “취화선”은 그 반대편에 있다.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태백산맥”, “춘향뎐”과 같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취화선”도 주제의식과 주인공의 모든 삶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아래 있음을 명시한다. “취화선”은 화가 장승업의 생애를 조명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이를 통해, 임권택은 조선 말기와 일제 시대의 사회를 조명한다. 그리고 안성기로 분한 선비의 입을 통해 감독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풀어 설명하기도 한다. 영화는 장승업의 작품 형성에 있어 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도 강조되고 있지만, 실제 그가 작품을 만들어 가기 위해 참조했던 중국의 그림들과 조선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요구들도 그가 장승업이라는 그림장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것들이 피에르 부르디외가 설명했던 ‘아비투스(habitus, 습속)’의 영향이다. 그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는 교차점은 그런 ‘아비투스’의 영향과 개인적 한계의 극복이 만나는 어떤 극점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영화에서 장승업이 기생과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데에도 사회적 의미가 있다! 임권택은 인생이,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부단히 사회적인 요구와 역사의 틀, 그리고 개인의 어떤 의지와 스스로의 틀을 깨고자하는 노력들-이것은 원초적인 문제, 즉 먹고 살기 위한 어떤 도구적 노력이 아닌, 창조적인 의지로 무언가 성취하고자 하는 보다 형이상학적인 노력이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선교한국의 한철호 총무님이 들었던 노예선 비유가 생각난다. 대충 이야기하자면, 기독교인인 한 노예선 선장이 노예들을 잡아다가 바다를 건너고 있는데, 부하가 여자 노예를 데리고 와서는 잠자리를 같이 하도록 조치하려 하자 선장이 화를 버럭 내며 쫓아냈다고 한다. 그러고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하며 기도하고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임권택과 홍상수를 나누는 기준으로 성도들도 비슷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시적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장은 기독교인이다. 그는 개인의 감정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금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직업의 사회적인 의미는 간과하고 있다. 결국 그의 세계관은 “기독교적 홍상수”일 따름이다. 서해교전의 의미, 부정직이 가득한 정치에의 관심, 기아들의 상황, 그리고 그에 대한 관심과 도움들.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우리 교육의 현실, 노동 환경의 실태, 사회 참여. 이에 대한 토론과 기독교적 대처가 전무한 채 이웃-이는 지극히 개인적 관계로 설정된 이웃이다-에 대한 사랑과 회개를 말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임권택의 “취화선”만 못한 기독교 세계관의 비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