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신입생들에게 고(告)함

** 이 글은 한양IVF 분서부의 <회보> 3월호에 적었던 시론입니다.

"나는...라디오에서 이상한 방송을 들었다. 청취자들이 전화를 걸어 아이 수능 점수가 얼마나 나왔는데 어느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지원 가능한 대학 이름과 학과까지 알려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전국의 대학들과 학과까지 서열을 매겨주는 그 친절한(?) 방송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방송을 하는 게 스스로 쑥스러웠던지 진행자들이 가끔 대학 이름보다는 적성을 더 우선시하는 게 좋겠다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걸 듣고선 이 사회가 100% 미친 건 아니고 99.99%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물과 사상> 13권에서 강준만 교수가 한 말이다. 사실, 요즘 세상이 그렇다 보니 아마 대부분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그게, 어쨌다는 거야'라며 도리어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2000년에도 새로 입학한 새내기 중에는 마땅히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성적이 너무 좋아서 그 성적에서 가장 많이 가는 의대나 법대를 들어온 이도 있겠고, 반대로 가고 싶은 과가 있었는데 성적이 모자라서 뜻을 접고 하위 학과로 들어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95년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울러 대학 서열간에 행복이 '붙어있기라도' 한 것같이, 칸칸이 나누어진 서열 사이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는 아래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위쪽에 대고는 부러움으로 인해 열등감 섞인 한숨을 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제는 대충 결과가 어떻든지 한차례의 커다란 "전쟁"이 끝났다고 여기며, 조금은 여유롭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그 동안 별렀던 많은 일들을 계획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화려한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미팅과 술자리, 게임과 동아리 생활, 학기마다 치르는 시험을 지내다보면 여러분은 어느새 대학생"같이" 변화될 것이다. 학교 일대의 잘 아는 카페, 자주가는 물(?)좋은 곳들, 레포트 잘 쓰는 비결, 학점 잘 주는 교수, 친한 조교들...그렇게 학기들을 보내고 서서히 졸업 때가 가까우면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토익공부, 입사시험, 임용고시, 기사 자격증, 유학과 같은 문제로 고민하게되고 또다시 처절했던 고3때 노력의 몇 배가 더 드는 사회진출 시험에서, 또 다시 좋은 직업, 편안하고 안정된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다.

우리는 아니 대부분의 고3들은 '왜'라는 질문보다는 '열심히'라는 좌우명으로 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대학이라는 고지를 탈환했을 줄로 안다. 동일하게 이 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열심히'라는 모토를 걸고 그럭저럭 지내다보면 위와 같은 결과가 여러분 앞에 어렵지 않게 보여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지만 묻고 싶다. 여러분은 이러한 미래에 진정 만족하는가. 그렇게 갈구했던 여러분의 이상은 무엇인가. 여러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 목표를 그토록 닿으려고 애쓰는 여러분 자신은 정말로 어떤 사람인가.

대학이란 고지를 탈환했다고, 여러분의 이상까지 탈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분이 전공을 선택했다고 그 전공이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님도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고(告)하고 싶은 말이 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묻히지 말고, 대중매체들도 인정하는 여러분의 분명한 의사표현과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가꿔가자. 갓 스물을 맞으며 대학에 들어왔지만 실상 시간이란 녀석은, 여러분의 생각보다는 빠르게 지나간다. 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가치있게 사용하여 여러분의 노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꽤 잘 어울리는 삶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행여, 사회의 그렇고 그런 구조 속에서 끌려 다니다가 중년에 기차에 뛰어드는 요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후회되는 삶으로 여러분의 소중한 삶의 사진첩을 더럽히진 않기를 또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