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입니다..

단상(Short Notes) no.10

2003. 9. 8. - 2004. 1. 16.

Beethoven

눈 수술을 전후해서
시력을 잃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았다.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모두 시각으로
얻어지는 이유에서였다.

난 최근에서야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서 작곡한
교향곡들에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상황과 자신과의
싸움을 넘어선 듯 하다.

MyJ :: 사람은 경험한 만큼 보게 된다.

단상

깊이가 없을수록
생략은 위험하다.

再喜 :: 어설픈 생략은 오히려 담론 자체를 가볍게 만든다.

크리스마스와 아기 예수

난 자주 잊는다.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리 고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는 방에서
잠시라도 있기조차 싫어하는 내게
말구유에 놓은 아기 예수는 그다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수의 탄생에 흥분하고 잔치날처럼 여기는 나에겐
여전히 그가 오심이 죽기 위함이란 것을 자주 잊는다.
목적이 죽음인 출생의 비극에 나는 흥분하고 있는 셈이다.

3년동안이나 한솥밥을 먹던 동료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른 동료들은 모두 도망친 상황에서
자신을 왕처럼 생각하던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제는 죽여버리라고 소리치는 자신의 일생을
이미 모두 알았던 예수의 고뇌를
나는 판타지 소설 보듯 가볍게 여긴다.

그리 친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불합리한 비난이나 누명을 쓰게되면
그리도 분하게 여기는 스스로를 보면서도
'대속'이라는 억울하기 짝이없는
종교적인 표현은 그저 상징적인 문구로 치부해 버리면서 말이다.

계급적 특성을 쉽사리 벗어버리지 못하는
나의 속물 근성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조물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피조물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그 낮아짐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큰둥 하기만 하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빨간 산타를 보며 흥청거리며
초록색의 가짜 크리스마스 트리에..
아무런 깊이도 느낄 수 없는 거리의 가벼움에..
나도 그렇게 가벼워지나보다. 그렇게 흥청거리게 되나보다.

올해도 내 신앙은 또다시 쓰레기로 판명난다..

再喜 :: 또 길게썼다..

Mont Blanc

미국에 있는 교수님 누님의 책주문을
대신해 드렸더니 고맙다고 주신 볼펜이다.

난 명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나
이 볼펜은 디자인과 쓰임새가 좋아서
꽤나 아꼈었다.

며칠 전 그 볼펜을 잃어버렸다.
다시 사기엔 너무 비쌀 뿐더러
그 정도의 가격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공장에서 아주머니들이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에 가까운 금액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며칠째 나는 그 볼펜을 생각하고 있었다.
속도 상하고 값비싼 볼펜을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결국 나또한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속물이구나 하고 말이다.
결국 나는 내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자
좌파 흉내를 내지만
나의 삶의 바닥에서는 볼펜 하나조차
명품을 써야하는 이유를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옷 한 벌, 차 한 대를 사더라도
나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명품을 사는 것 아닌가.
글씨 몇 자 쓰겠다고 몇 십만원씩 들여서 만든
볼펜을 좋아라 쓰다가 잃어버리고서는
내심 안타까워 하는 날 보며...

구토를 느낀다.

그렇게 물들고 있는 내가 역겹다.

再喜 :: 물론, 교수님 누님께는 죄송한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