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 만연한 벚꽃을 대하며

봄 기운 만연한 벚꽃을 대하며...

또다시 한기를 몰아낸 햇살은 꽃들의 기지개를 재촉하는 듯 합니다. 어느덧 군데군데에서 보이는 노란 개나리의 아기자기함이 미소를 만드는 것을 보면 자연의 힘은 참으로 놀라운 것 같습니다.
많은 아파트 단지내에는 벚꽃나무로 가로수를 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하얗게 펼쳐진 자연의 거리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작은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지 반일적인 감정때문에 "사쿠라"라는 이름으로 그 아름다움을 냉정하게 비난하는 것은 벚꽃을 대하는 바른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만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요사이 봄비가 잦습니다. 겨울이라는 '녀석'은 끝내 따뜻함을 주려는 봄에게 짖궂은 장난을 해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맑은 하늘에 간혹 보이는 비구름은 우리에게 여전한 쌀쌀함을 주곤 하는데 이 비로 인해 만연히 피어있는 벚꽃이 간혹 떨어지곤 합니다.
비가 오는 거리에 한없이 피어있는 벚꽃의 정취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곤 합니다. 맑은 하늘에 벚꽃나무 가로수들은 수채화의 정서를 담고 있다면, 비가 오는 날의 벚꽃나무의 주변풍경은 동양적 정서를 담고있는 한 폭의 수묵화와 같습니다. 한없이 슬퍼보이기도 하고, 또한 달리 보면 어두운 거리를 흰 꽃들로 환하게 밝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럭저럭 감상에 잠겨있을 때 즈음이었습니다. 거리에는 푸른 색 모자를 쓴,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청소부 아저씨가 한없이 떨어진 꽃잎들을 쓸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없이 떨어지는 꽃잎들은 어쩌면 그분께는 참으로 힘든 노동임이 분명합니다. 도로변에 떨어진 하얀 꽃잎들은 어느새 빛바랜 검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고, 떨어진 지 오래된 잎들도 어느새 그 순수의 색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비 온뒤의 거리는 낭만으로만 충만한 거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거리는 한없는 쓰레기들로 무질서해졌고, 누군가가 치워야만 하는 정돈되지 않은 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에 매혹되곤 하지만, 유용함에 놀라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숨은 헌신들은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거대한 축제 뒤엔 항상 고용된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역사에 있어 뛰어난 건축물들은 수많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노예처럼 동원되어 이루어낸 왕권의 횡포였음을 기억합니다.

성숙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철없는 감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 이후에 있는 귀찮은 작업들을 감지하고 그 일들을 자신이 친히 해나갈 줄 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십자가에 달릴 수는 있어도 거지와 하루밤을 같이 잘 수는 없다!"
실상, 우리의 정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지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그릇된 말이기는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명예로운 죽음'을 상징한다는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전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업적, 자신을 과신할 수 있는 일, 남이 다 인정해 주는 명예로운 길이 벚꽃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다면, 뒤에서 돌보는 삶, 자신이 썩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 세상이 한 계단의 진보를 이루는데에 초석이 되는 그늘진 삶은 빛 바랜 꽃잎들을 치우는 청소부의 수고에 비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새 천년에는 좀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