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아버지의 통곡", 그리고 사랑...

김광석, "아버지의 통곡", 죽음, 그리고 사랑

잘 지내는지 그 곳에서도 가끔은
나를 생각하곤 하는지
니가 없음에 이젠 익숙해져 가는
내 모습이 혹시 서운하지는 않은지

가을 향기 같던 사람
아침 햇살 같던 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를 사랑했던 사람

쓸쓸한 너의 미소처럼 남겨진 너의 노래만 들려와

노란 국화꽃 어지러운 향기에 쌓여
마지막 겨울 흔들리던 차가운 하늘로

아무런 얘기도 없이 거짓말처럼 넌 떠나고
함께 걷던 이 거리엔
주름진 너의 미소처럼 쓸쓸한 너의 노래만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다면
꿈 속에서라도 말해줘 너 떠나던 밤
가려진 모든 진실을...

(박학기, "남겨진 너의 노래-광석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당혹감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다투었던 관계도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기에 밤 늦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을 후회하고 그를 위해 사과의 말들을 찾게 되며, 그렇게 우리는 '어제' 제대로 대해 주지 못했던 일들을 되새기며 '내일'을 기다리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그런 기대감을 단번에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는 고통이요, 슬픔임을 기억합니다. 더 이상 우리 사이에 내일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정 '죽음'이란 것은 '어제' 했던 말들을 사과할 수 없고, 몇 주째 이어졌던 냉랭함에 대해 변명할 기회조차 앗아가 버리는 영적 재난인 셈입니다.

흔히 기독교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얘기하면서 "죽음"을 가볍게 다루어 왔음을 상기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인 만큼 지금의 짧은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제 생각도 그와 다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이라는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함이 있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슬픔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는 그를 살리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라는 상황 앞에 슬피 우셨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슬퍼하는 이들에게 기뻐하라고 권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이라는 재난이 가져간 사람과 과거에 나누었던 개인적인 관계의 특이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함께 웃었던 기억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함께 울었던 기억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함께 했던 그 눈물겹도록 소중한 시간들이 결코 객관화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이며, 그것에 대해 타인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진실로 아름다운 위로는 그들 앞에 "죽음"이 별 것 아니라며 하려는 피상적 권고가 아니라 그의 손을 잡고, 같이 울어 주는 것이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들의 죽음을 경험한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삶의 일상성이 우리를 흩어 놓는다. 자기의 것에 몰두하다 보니 잊어버리게 되고 염려와 슬픔 때문에 무관심해진다. 가까이 있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몰라준다. 서로를 제대로 소중히 여겨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은 스물 다섯 해 동안 우리에게 하나의 큰 선물이었다. 그 선물이 갑자기 없어지고 난 뒤에야 난 그 선물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말해 줄 수가 없었다.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에릭을 칭찬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 편지를 보며 나는 다시 울었다. 칭찬의 말 하나하나가 바로 상실의 아픔인 것이다.

그 애가 가버리고 없는 지금 어떻게 그의 지난 날을 두고 감사할 수 있을까? 물론, 감사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없음'으로 인한 아픔이 '한 때 있었음'에 대한 감사보다 더 크다.
난 내가 그 애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그가 가버리기 전까지는 몰랐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아버지의 통곡", p18)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사랑임에 분명합니다. 상실을 통해 가까운 곳에 "존재"했던 것들의 진정한 가치들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건강을 잃어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는데, 하물며 인간 관계 속에서의 '상실'이야,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앞에 슬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아니라 '죽음'이 우리 앞에 놓인 정상적인 환경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죽음"과 관계된 모든 재난들에 함께 아파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가치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 같지는 않겠지만 가까이 있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작게는 관계의 단절 또한 서로간의 인격적 '죽음'임도 기억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을 묵상한 저녁...
당신은 내 기억 가까이에 있기에 영원히 소중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1999.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