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통한 섬김

사춘기 시절, 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결혼 풍경은 항상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신랑, 신부 앞에서 장황한 주례사를 늘어놓는 연기자는 항상 똑 같은 질문을 하기 일쑤였고, 그에 대한 저의 반응은 약간의 지루함과 ‘뭐 저런 구태의연한 얘기를…’하는 식의 냉소적인 그 무엇이었습니다.

“신랑 아무개 군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이렇게 시작하는 질문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이라는 대목에선 ‘풋~’하는 가벼운 웃음까지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회 생활은 오래 하였지만, 나의 죄된 본성과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해서는 예배당에 익숙해진 지 십여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끊임없는 저 자신의 낮음과 부족함들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 그 분의 인도하심, 그 분의 은혜, 자비, 충만함, 인내하심은 제가 알던 것과 같은 명제적인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선포하는 그 어떤 함성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사영리’의 깔끔한 단계적 구분이나 도표화된 정의(definition)로 담을 수 없는 그 어떤 온유하고 평안한 인격과의 대화가 그 안에 녹아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대화와 깨달음이 아니라, 한 해 두 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생기는 그 어떤 전인격적인 변화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그 변화들은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과 세상을 향한 관용과 사랑의 마음과 그 헌신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아직 부족한 제 마음을 볼 때면 오랜 신앙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온유함과 겸손함, 그리고 사랑을 배워간 어른들에 머리가 숙여지곤 합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곤 합니다. 철없고 욕심이 앞서기만 했던 사춘기 시절에 그렇게 비아냥거렸던, 그 진부한 주례사에서 저는 ‘복음’을 발견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결혼의 예식을 올린다는 것은, 이제는 그 사람이 가진 물리적인 소유물이나 재능을 넘어서 그 사람의 전 인격과 영혼을 대가 없이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아끼고 살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신체의 한 부분을 잃거나 물질의 궁핍함을 느끼게 되거나, 탁월한 재능이 쓸모없게 된다 하더라도. 처음 설레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익숙함이 그 사람의 단점을 더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보도록 이끌며, 그런 가운데에서 때론 식상함을 느껴 다른 새로움으로 이러한 자신의 감정을 대처하려는 마음이 들더라도. 이것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의 교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성취는 성도의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또 제가 경험한 바입니다.

하루하루 저의 사랑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성경을 묵상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제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할 수 없는 가벼움이 존재합니다. 이성 교제를 통해,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한낱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저를 위해 그 희생적인 사랑을 확증하신 것을 가치 없게 만들어버리곤 하는 제 모습을 직면합니다. 제 사랑이 정말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또한 지나치게 합리적이라는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나인데.

예수님은 그런 저에게 하루하루 일상을 돌아보게 하시며, 그 가운데에서 온유한 음성으로 권면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집중하고 그 사람의 물리적인 기반이 어떠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사랑을 내 안에 품기에도 벅찬 나에게 하나님은 그 이상의 무엇을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것이 사랑의 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성하신 그 무엇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을 통해’ 확증하신다는 역설적인 진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인 듯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확증하듯이,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을 지켜가는 것은 그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인격적으로 섬기고자 마음먹을 때, 그 첫발을 내딛고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때,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확증하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사랑이 초심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며 서로에게 때론 원망과 질투의 감정을 느끼며 긴장감으로, 때로는 서먹함으로, 종국에는 정리된 감정으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으로, 네 사람을 섬길 때, 또 그 사랑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길 때, 그런 사랑의 진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 때에…

진정 그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고 굳건하게 확증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