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숙한 아내

이진오

98년 4월. 내가 아내 이영진과 결혼할 때 내가 처해있는 상황은 어려웠다.(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 나는 한 신학대학의 학생회장이었는데 학내문제로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나와 우리 임원들에 대해 압박을 가하였고, 급기야 징계를 받기에 이르렀다. "제적"의 위협 속에서 나는 옳다고 믿는 바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승낙받은 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렸다.

아내와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육군 중사로 있던 95년 10월이었다. 나는 같은 선교단체의 4년 후배인  아내를 처음 만난 후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될 수 있는한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내 부모님의 반대는 예상보다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전문대를 다니다 휴학하고 군입대하여 병장때 장기지원해 4년째 군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앞으로 선교단체 간사가 되겠다고 하니, 딸 가진 부모로서 기가 막힌 노릇이었을 것이다. 결혼을 언급할 당시 아내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임용고사를 준비하던 때였다. 아내의 어머니는 딸이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둘째 딸인 아내가 공부를 잘해 과 수석으로 졸업하는 것을 대견해 했고, 안정적으로 교사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키도 크고 미인이다. 형편도, 전망도, 학벌도, 인물도 변변찮은 사람이 딸을 달라하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아마 나라도 반대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내와 나는 동성동본이다. 멀기는 하지만 둘다 본이 "전주"인 것이다. 이 결정적인 문제는 아내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좋은 반대 명분이었다. 우리는 1년간 기도하며 가족들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98년. 그해부터 동성동본에 대한 제도가 바뀌었고 결혼이 허용되었다. 당시 나는 제대하여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마음에는 들지 않으나 결정적 명분도 사라지고 두사람의 사랑이 큰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결혼을 허락해 주셨다. 그러면서 기왕 할 것 일찍하라고 독려해 주어 그해 4월에 결혼하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 제적에 대한 문제가 가시화 될 때 나는 아내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였다. 나는 자매가 원하면 소신을 굽히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고도 고맙게도 아내는 내가 자신 때문에 옳은 것을 옳다고 할 수 없다면 나를 떠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거나 안하거나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하였고 그때 이 여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제적은 면하게 되었다.

2000년. 뜻하지 않게 아내가 임신하게 되었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기에 아내나 나나 모두 당황스러웠고, 당시 '새벽이슬'을 처음 시작하던 때라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상황이라 부담은 더 컸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에 감사하게 되었다.

산달이었지만 아직 10여일 출산일이 남아있던 터라 그날 하루종일 아내는 나를 도와 '새벽이슬' 발송작업을 하고 함께 집에 들어갔다. 저녁 10시경 아내는 아무래도 오늘 아이를 낳을 것 같다고 하며 머리를 감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 건성으로 대답하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2시경 아내는 나를 깨우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아내와 나는 미리 정해 놓은 병원에 한 20여분 걸어서 갔다. 의사는 아내를 진찰하고 나오더니 깜짝 놀란 말투로 어떻게 지금까지 견디었다고 한다. 저 정도면 보통 사람은 죽는다고 난리란다. 그런데 걸어서 병원에 왔으니...아내는 4시간의 진통 끝에 첫째인 예손이(예수님의 손길)을 낳았다. 나는 의사선생님께 부탁해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는 것과 아내와 아이를 위해 화분을 하나씩 사오는 것 뿐이었다.

2001년. 역시 계획하지 않은 둘째를 임신하였고, 역시 이번에도 출산일보다 10여일 일찍 둘째 예준이(예수님의 준비된 사람)를 낳았다. 역시 나는 분만실에 들어갔고 화분을 하나 더 샀다.

둘째를 낳은 상황에서도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달 그달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새벽이슬'을 만들고 있었고 스포츠투데이 반대니, 세습반대니 부담스러운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우리 가정 형편도 있고 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고 형편이 좋아지면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키로 했다. 특별히 입양할 때는 꼭 딸을 키우자고 다짐했다. 사실 첫째 때부터 아내와 나는 딸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름도 예온이(예수님의 사랑 온누리에)라고 지어 놓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아내'현숙한 여인'
2001년 9월 아내가 느닷없이 교사임용고사를 보겠다고 한다. 그동안 몇번 보기는 했지만 애들키우며 변변히 공부를 못하기도 하고, 사범대 출신이 아니라 가산점에 불이익도 많아 떨어졌었고 애 둘 키우면서는 당분간 접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겠다니 나는 갈등이 되었다. 몇분과 상의해도 부정적인 대답들 뿐이었다. 나는 기도하면서 아내도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시험을 앞두고 아내는 처가집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고 첫째는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놀이방에 맡겼다.

그런데 11월 아내는 천천병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임신 2개월. 솔직히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임신주기와 전혀 상관없는 시점인데 어떻게 이런일이...병원에서도 임신주기가 아닌 때 임신이 되어 유산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내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얼마후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처가 식구들과 함께 드리는 가정예배 때 말씀을 전하며 임신 사실을 알리고 오히려 감사한다고 고백했다. 물론 처가 식구들은 난리가 났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는 그해 12월 교사임용고사에 함격하였고 2002년 3월부터 중학교에 국어교사가 되었다. 2002년 8월 10일 토요일. 놀이방에 보내기는 했지만 퇴근후면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이면 아이들로 분주했던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처제에게 맡기고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예매도 하고 들뜬 마음이었다. 아내는 상영 시간이 2시가 되기까지 시간이 있다며 1시 산부인과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그런데 곧이어 온 전화를 통해 오늘 출산할 것 같다고 하였다. 당연히 영화는 포기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는 배넷저고리며 젓병이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삶고, 빨고 준비하더니 오후 4시 병원에 갔다. 셋째 딸 예온이는 오후 5시 30분에 출산하였다. 병원에 간지 불과 1시간 30분 후의 출산이었다. 나는 안된다는 의사선생님을 설득해 분만실에 들어갔다. 의사선생님은 아내에게 남편이 있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고, 아내는 꼭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처가집에서 예쁜 셋째 딸 예온이와 몸조리를 하고 있는 아내를 생가하면 나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 지금 내가 '새벽이슬'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현숙한 여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의 아내 이영진 때문입니다.

여보, 예손아, 예준아, 예온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