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신학으로 영화 읽기

1.
대낮부터 술을 퍼 마시고 쓰러져 게걸대는 젊은 여자. 이름도 모를 남자에게 업혀 뒷골목 여관에 아무렇게나 몸을 내맡기는 여자. 아무에게나 욕지거리를 퍼붓고 손찌검을 하는 되먹지 못한 여자. 건성으로 이 영화를 보면 틀림없이 이 영화는 삼류 영화에 지나지 않는 위험스러운 영화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인공 여대생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를 사별하고 그를 잊기 위해 차라리 엽기적인 여자가 되길 자원한다. 죽은 애인을 끝까지 마음에 담아 놓고 그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며 살기 위해 어느 남자도 자기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라리 엽기적인 여인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토하고 아무데나 쓰러져 추한 모습으로 곯아 떨어져 잠을 잔다. 이러한 더러운 행동으로 모든 남성들이 그를 기피하게 만들고 그녀는 영원히 혐오스러운 지저분한 여자로 변하고 싶어한다.

애인과 사별하고 꼭 일년이 되던 날. 그날따라 그녀는 더욱 미치도록 보고 싶은 옛 애인을 생각하며 너무나 잊을 없는 그를 잊기 위해 하루 종일 퍼 마신 술로 만취되어 버림받은 듯한 자기인생을 인간시장에 아무렇게나 패대기치고 싶어한다. 애인 따라서 같이 죽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며 만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간신히 전철을 타긴 했지만 인사불성이다.

술 취한 그녀가 마침내 생각 없이 방심하고 앉아있는 아저씨의 이마에 갑자기 오물을 토하며 갖은 추태를 다 부리자 옆에서 보고 있던 한 청년이 보다 못해 그녀를 보호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와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이 흔들릴까봐 더욱 고약한 엽기녀로 변신한다. 자기를 도와주는 남자를 호되게 부려먹고 야단치고 반말하고 심지어는 뺨까지 때려댄다. 그러나 착한 그 남자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주며 그녀가 하자는 대로 모두 해 준다.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그 남자는 그녀가 보기엔 전 애인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에게서 이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성의 감정을 누가 억제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더욱 엽기적인 모습으로 그 남자에게 대하며 그 남자가 자기를 멀리 떠나게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전 남자와 그렇게도 닮은 그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라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도 여자이기에 인간이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너무나 사랑하고프기에 멀리 차버리고 싶은 심정 속에는 늘 전 애인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

2.
강남 역 주변의 밤거리는 역시 사람들로 분비고 번잡스럽다. 음흉하고 칙칙한 그 어느 거리에 비해 강남의 밤거리는 젊은이들로 힘차고 활기 있고 생기가 넘친다. 어느 영화 한 장면의 엑스트라나 된 것처럼 우리 가족 네 식구는 사람들 틈에서 손을 놓칠세라 꼭 쥐고 강남의 밤거리를 걷다.

오랜만에 방학을 맞아 가족과 서울 처남 네 집으로 나들이를 오게 된 거다. 실은 나들이라기보다는 애들 여행시켜 준다는 핑계로 서울 볼일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예정된 2박 3일이 다 지나가고 내일 아침이면 내려가야 될 텐데 아이들을 위해 이렇다할 서울구경 한번 시켜주지 못했다. 손녀같이 늦은 막내 어린 딸이 오랜만에 서울 왔다가 내일이면 여행을 마치고 떠나야 하니 너무 서운한지 오늘밤 영화구경이라도 가자는 제의가 오다. 열 살 박이 아이에게 입장을 허가할 영화가 뭐가 있겠으며 그런 영화가 있다한들 얼마나 재미가 있겠는가마는 금번 여행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니 그렇게 하마하고 따라가 본 것이 '엽기적인 그녀’이다.

그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기본상식도 없고 해서 이상한 장면이나 나오면 어떡하나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 했지만 야한 표현이 나오지 않아 매우 대행이다.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터라 배우 이름도 아직 모르지만 생가보다는 괜찮은 영화다. 엽기적인 연기를 해대는 여배우의 연기와 그에 순종하며 따라 다니는 남자 주인공의 어리숙한 행동은 쉴새 없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여 영화관으로 가득 찬 관람객들로 웃음바다를 이루게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바탕 웃음을 웃어볼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이지만 거기엔 분명한 메시지와 내용이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와의 대립된 관계를 좁혀 서로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모색한다. N세대는 기성세대가 염려하는 만큼 그렇게 자유분방한 세대가 아니라는 것. 오늘의 N세대는 기성세대들의 젊은 시절 못지 않게 순결하고 정조가 있다는 것. 그들은 표현을 자유롭게 하고 외모를 자유롭게 꾸미고 남에게 구애받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하므로 기성세대들에게 위기감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순결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기성세대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성(性)을 팔고 사고 희롱하기도 하지만 N세대는 그런 유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 기성세대의 위선과 술수와 교만에 대한 고발이 있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위선을 버리기 전에 더 이상 젊은이들을 교훈 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기성세대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그분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더 좋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결론부분 두 사람의 맞선을 통하여 보여준다.

3.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남 앞에서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순결한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이 표현과 행동을 자유롭게 하여 때론 기성세대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그들은 기성세대 못지 않게 알차고 밝은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무조건 이들을 염려하고 불신하는 태도로 대하지 말고 오히려 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특히 종교적인 짜여진 틀과 고착화된 생각으로 이들을 과잉보호하여 염려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예수의 사랑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어루만질 때 이들이 더욱 창조적인 인생을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밤늦게 영화관에 앉아 즐기는 모습은 타락한 모습이 아니요 새 역사에 대처하기 위한 진지한 수련의 과정임을 기성세대는 이해해야 할게다.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이 젊은이들이 처하여 있는 오늘의 진흙탕 사회는 그들이 헤쳐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그들을 더욱 멋진 인격체로 성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너무 맑은 물 속에서만 키우면 기성세대는 끝까지 그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해야 되는 수고를 해야 될 거다.

지난 번 계곡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어린이들은 계곡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놀다가 물고기를 잡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그 물고기를 집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 이도 있었고 매운탕을 끓여 먹자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분노하며 모두 물에 놓아주어야 된다는 거다. 그들은 잡을 때는 재미로 잡았지만 그 놈을 집에 가져간다던가 끓여 먹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살려 주자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참으로 우리의 미래가 너무도 아름답고 밝다. 우리 어린이들이 저렇게만 자란다면 우리 지구촌의 미래는 참으로 희망이 있을 게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면에선 기성세대보다 더 앞서가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의 문제도 알고 정치의 문제도 안다.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원으로 영화관으로 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외도(外道)가 아니요 정도(正道)를 걷기 위한 워밍업이다. 얼마 전 교회에 처음 나온 초등학교 학생이 저희 또래 앞에서 노래 자랑한다고 불러 배꼽을 자아내게 했던 유행가가 생각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 -" 가수의 모습과 목소리와 몸동작을 흉내내어 불렀던 그 초등학생의 유창한 노래 솜씨는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배꼽이 빠지도록 웃게 만들었지만 그 노래의 가사는 아직도 뭉클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유행가의 가사처럼 정말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신의 성품,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자기가 자라온 방식으로만 세상을 읽으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게다. 더구나 자기세계에만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게다.

한번 쓰고 나면 곧 버리는 인스턴트 시대의 위험한 문화와 의식구조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순수한 사랑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내는 작가. 그는 황순원의 '소나기' 보다도 더 순결하고 애틋한 사랑을 이 영화에서 지향하므로 일회성의 천한 사랑에 빠져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순정과 순결과 참다운 영원한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그 영화를 보며 한바탕 배꼽을 쥐고 웃었던 젊은이들은 주인공의 그 아름다운 사랑을 동경하고 그리고 실천하고 싶은 다짐이 마음속에 조금씩은 있었을 게다. 작가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게 아닐까. 기성세대가 염려하는 자유분방한 청년들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들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는 타락한 인간을 끝까지 끌어안고 구원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뉴스앤조이>에서

이강무 (2001-08-09 오후 3:4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