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nkino에 실렸던 기사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조감독 출신인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미술관 옆 동물원> 이후 모처럼 만나는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다. 일상의 모습들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찰한데서 출발한 것이 분명한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낸 시나리오부터 평범한 은행원 봉수 역의 설경구와 푼수같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원주 역의 전도연은 영화와 딱 어울리는 모습을 자연스런 연기로 펼쳐보인다. 거기에 사소한 곳까지 신경쓴 깔끔한 연출이 덧붙여져 오랜만에 영화가 끝난 후 흐뭇한 마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영화를 만나는 느낌이다.

영화는 봉수가 앞으로 자신의 아내가 될 누군가에게 남길 말을 비디오 촬영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가진 한 남자. 근처 보습학원에서 일하는 원주는 은행을 드나들면서 이 소심하면서 무뚝뚝하지만 알고보면 은근히 정 많은 봉수에게 관심이 간다. 거기에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두 사람이 함께 갇히고, 민방위 훈련 도중에 시내를 같이 질주하는 등 두 사람은 인연도 많다. 그래서 원주는 봉수에게 접근해보려는데 봉수는 우연히 옛 동창 태란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원주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버린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부터 시작된 스크루볼 코미디를 이어받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두 남녀의 밀고당기는 사랑 게임을 그 바탕으로 하는데 비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은 밋밋한 편. 특히 태란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삼각관계는 자연스럽지 않아 영화 속에 잘 녹아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문에 드라마가 약해져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딸리는 듯한 인상이 없진 않지만, 세심히 공들인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이러한 약점을 충분히 덮어두고도 남을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세세한 디테일들을 충실하게 잘 살린 장면들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상과 환상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출근길에 대문을 나섰다 핸드폰을 집으러 다시 돌아가는 등, 세세한 일상의 모습들을 충실히 묘사하면서도 그렇다고 일상을 영화의 핵심으로 잡지는 않고, 봉수의 마술을 통해 환상적인 면을 가미하긴 하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의 영화 속 영화처럼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도 않으면서 균형을 잡으며 영화를 진행시켜 나간다.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 조감독 출신답게 봉수와 원주의 부모에 대한 죽음의 기억을 통해 일상에서의 죽음의 문제를 잠시 끄집어 내는 대목은 영화를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외로움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통해 표현된다. 두 사람이 처음 말을 건네는 것도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앞에 서 있을 때고, 이정선의 노래 가사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이면 남몰래 울기도 하고'가 연상될만큼 두 사람이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영화 속에는 비가 내린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가 자신의 짝패라는 것을 알게된 후 봉수와 원주가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는 것으로 둘의 외로움은 끝난다. 나뭇잎을 따며 '이 남자다, 아니다'가 아니라 '이 남자다, 이 사람이다'로 봉수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자신의 짝임을 확인하려는 원주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이어지는 장면은 둘의 외로움이 끝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이 비 그친 후 눈부시듯 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 최근 인상적인 영화음악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성우가 <플란다스의 개>에 이어 재즈를 바탕으로 한 영화음악을 펼쳐보인다. 로맨틱 코미디에 재즈라는 점에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쓰였던 'It Had to be You' 연상시키는 주제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가사가 잘 어울린 것 같다는 조성우의 생각에 노총각 이현우에게 제안이 들어갔고 이현우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재즈 풍의 주제곡을 멋지게 소화해낸다. 이러한 영화 밖 이야기까지도 엷은 미소를 지어내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재밌고 상큼하고 깔끔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전도연,설경구 인터뷰

2001/01/04 / 임영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은행원 봉수와 밝은 성격의 보습학원 강사 원주가 엮어가는 평범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조감독 박흥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특히 두 주연 봉수와 원주 역에 설경구, 전도연이 캐스팅되어 화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진지한 연기와 자연스런 연기를 각각의 상반된 강점으로 가진 두 배우의 로맨스가 과연 어떤 그림으로 형상화될까가 주목되어왔다. 무엇보다 <박하사탕>, <단적비연수>, <유령>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다소 과(?)한 연기를 보여준 설경구의 경우, 소프트한 멜로 연기로의 변신이 우려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설경구는 그러한 주변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 정도로 '다르게' 진지했던 것 같다. 인터뷰 중 설경구 자신이 한 말- "봉수는 저와 많이 닮았어요"- 처럼, 배우 설경구는 평범하고 예사로운 은행원 '봉수'의 몸 안으로 녹아들어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 예의 번뜩이는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도 하지만서도.

1월 3일 2시 씨네큐브 극장에서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기자시사회가 있었고, 영화 상영후에는 전도연과 설경구의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다. 프레임 안에서처럼 매우 친밀해진 두 배우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이전의 작품에 비해 연기변신의 폭이 큰 것 같은데, 연기 변신의 주안점은 무엇입니까?

전도연 : 매영화마다 변신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습니다. 다르게 변신했다고 봐주시니 감사한데요, 모두 전도연의 모습이예요. 다른 연기자들은 작품 끝내면, 그 역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하는데요. 저는 금방 잘 잊어버리는 편이어서요, 쉽게 잘 몰입하는 편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노력했던 부분은 굉장히 '일상적인 부분'들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일상과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일상의 합일점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설경구 : 변신을 노리거나 (그런 것은 아니구요).어떻게 제가 변하겠습니까? 저는 설경군데... 변할 수가 있나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오히려 <단적비연수>나 <박하사탕>같은 작품보다 편하게 작업했습니다. 저 개인은 카리스마가 없는데, 자꾸 카리스마를 하라니까, 그 작품에 맞게 애를 쓸려고 한 거구요. 이번 <나도 아내가...>는 '설경구다'하고 작업했습니다. 봉수랑 저랑 비슷한 면이 많거든요.

시나리오 선정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설경구 : 저는요. 첫장부터 끝장까지, 아무리 배가 고프고 생리적인 현상이 있어도 단숨에 확 넘겨버려야 되요. 읽고 나서 한숨이 '후~'. 나오는 그런 영화. 흥행 이런 건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제가 재밌어야 되요. 제가 막 다음 장이 궁금해져야 되요. 제가 좋아하는 시나리오면 되요.

전도연 : 저도요. 저도 시나리오를 단순하게 보는 편인데요. 제가 읽어서 재밌는 시나리오면 되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설경구 :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질문들을 하십니까?
전도연 : (웃음)그럼 똑같이 대답하면 되잖아요?

설경구 : 마지막 장면이요. 비피하고 들어와서....소나기가 내리잖아요. 여우가 시집가고 호랑이가 장가가고 (대화)하면서, 뒤에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그 장면. 시나리오 볼때도 참 좋았어요.
전도연 :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습니까? 다 좋은데요. 원주가 봉수한테 데이트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후에 봉수랑 스쳐지나가 지나는 장면에서요. 원주가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돌이 된다. 돌이 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요. 찍을 때도 그 씬이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찍을 때 느낌만큼, 그 장면이 잘 나온 것 같아요.

전도연씨는 최근 노총각 연예인들이 뽑은 아내로 삼고싶은 여배우 1위에 선정되었는데요. 소감은요? 그리고, 맡는 역할이 주로 짝사랑을 하는 캐릭터인데요. 그런 캐릭터가 편해서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전도연 : 아내로 삼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구요, 실제로 대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질문 받기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 못했는데, 제가 짝사랑만 했나요? 전 나누는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요. 편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구요, 제가 그런 쪽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들 하시나봐요. 바보같이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그런 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제가 다른 것보다는 멜로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마술은 설경구씨께서 직접 하신 겁니까?

설경구 : 제 얼굴이 보이지 않나요? 합성한 사진이 아니고, 제 손입니다. 명함에서 동전옮기는 것은 딸려고 했는데, 제가 직접 하게 됬습니다.
전도연 :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설경구 : 전도연씨에게 꼭 확인하고 했습니다. '나 오늘 재밌는거 배웠다' 이러면서...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포스터 촬영때, 전도연씨는 매우 능숙하게 사진촬영에 임했는데요, 설경구씨는 약간 어색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경구 : 만난지 이틀된 사람을 뒤에서 안으라 그러고. 날 더운 날 식은땀 안 나겠어요? 에어콘도 안 틀어놓고... 식은땀 나지. 난감했습니다.
전도연 : 설경구씨가 낯을 너무 많이 가려요. 어떻게 친해져야 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어느 한 순간에 친해져버렸어요.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리고 대부분 남자(연기자)들이 사진 찍는 것을 잘 못해요. (설경구를 가리키며) 특히 더 못하지만요. 많이들 어색해 하시더라구요.

2001년의 계획이 있으십니까?

설경구 : 계획 잡힌 건 당장은 없어요. 11월경 이창동 감독님과 작품에 들어갈 거구요, 그 때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전도연 : 저는요 11월의 약속 같은 것도 없어요. 빠른 시간 안에 빨리 좋은 작품 만났으면 좋겠어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영화입니까?

설경구 :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시는 분들. 겨울이 길어요. 밤이 길구요. 겨울이 시리도록 춥고 외로우신 분들 많을 것 같은데...솜같이 따듯한 걸 원하시는 분들. 이 영화를 보면요, 물론, 2001년 한해가 따듯해지진 않겠지만요. 2001년의 시작을 우리영화로 시작한다면... 잠시 한숨 돌리시고 웃으면서 나올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도연 : 굉장히 일상적이고 진지한 영화예요. 큰 러브 스토리는 있는 것은 아니고 일상적인 (영화입니다). 봉수하고 원주(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얘기거든요. 뭔가 자신의 생활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게 해주는 영화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