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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 진정 구토를 일으키는가

/ 김용주

프랑스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거나 충격적인 영상들을 기피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영화 자체도 혐오감을 가지고 대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의 평에도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혹, 내가 영화를 보던 그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다가 폭력적 장면이 나올 때 욕을 하며 극장을 나올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은 영화<박하사탕>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극장을 나오면서는 그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내 중심에 파고드는 감정이 있었는데, 뭐라고 이걸 풀어내야 할 지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잡지의 평을 올렸다.
지금에 와서 나는 그 불명확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치 코드를 풀어낸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혹은, 비밀번호를 알아낸 금고를 열어본 느낌. 그런 것 말이다.

먼저 영화의 등급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미국에서 NC-17이란 등급이 있다. 17세 미만의 미성년자 관람불가란 뜻이다. 여기에는 장면뿐만 아니라 대사나 소재도 포함이 된다. 즉, 소재가 근친상간이거나 성적 대화가 오고 가면 그것도 등급을 조정하는데 영향을 주며, 그러한 등급은 영화의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례로 <원초적 본능>은 처음에 NC-17등급을 받았지만 문제의 장면들을 삭제하여 R(제한적 허용)등급으로 전환시켰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등급 제한의 극점으로 달린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넘겼지만, 지금 내가 드는 생각은 감독이 이러한 등급의 구분을 의식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단순히 이 영화가 야하다는 수준의 말이 아니란 얘기다. 영화 초반에 어떤 노인이 등장하는데 그 노인은 예전에 자신의 딸을 강간했다는 이야기로 영화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이미 이 영화의 등급은 R로 뛰게 되며, 다음에서 그 문제의 장면인 소화기로 한 남자의 머리를 짓이기는 영상이 나온다. "텅.. 텅.. 텅.."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머리가 박살이 나는 장면이 몇 분간 보여진다. 이미 등급으로 보면 최고를 넘어섰다. 그 다음 장면에서 범인이 여자 주인공을 강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저질스런 대사와 함께 컷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10분간 강간 장면과 폭행 장면이 함께 나온다. 등급을 의식했다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강간과 폭력을 함께 배치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두 남녀의 베드신이 이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 감독이 등급의 극점이 될 만한 장면들만 일부러 촬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충격적 장면을.."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질문은 이것 하나였다. 영화는 스토리의 흐름을 시간 역순으로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 사이 마다 카메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빙글거리는 영상으로 하늘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이전의 사건을 보여준다는 것. 시작과 끝이 특이하다는 것 외에는 진부한 소재와 내용에 다름 아니었다. 이 감독은 단순히 영상의 파격을 가지고 대가의 반열에 올라가고 싶었던 건가.

영화를 본 지 1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돌이킬 수 없는>의 첫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첫 장면이 영화의 전편과 감독의 입술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나이 많은 두 사람이 하는 대화로 시작된다. 한 노인이 자신이 예전에 자신의 딸을 겁탈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다. 참 예쁜 아이였는데 자신이 망쳐놓았다고 크게 후회를 한다. 그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성적 우스갯 소리도 해대면서 가볍게,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잊으라고 말한다.

현실 사회에서 강간은 흔한 일이다. 노인의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근친상간이라거나 혹은 겁탈을 당하는 일은 정말 많이 일어난다.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그 사건이 정작 그 당사자에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된다. 카메라는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마치 먹이를 찾는 새처럼 주인공의 코 앞에 와서야 멈추는 포즈를 연출한다. 그렇게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피부로 와 닿는 거리에 가면 그 사건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것이다. 감독은 그것을 말하려 했던 것 같다.

소화기로 머리통을 짓이기던 사람은 강간당한 여자의 남자친구의 친구이자 그 여자의 전 남자친구이다. 거꾸로 시간을 돌리는 장면에서 그 남자친구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내줘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그는 소심하지만, 사려 깊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반면 남자는 낭만적이지만 헤프고 쉽게 흥분하지만 또한 그로 인해 쉽게 당한다. 틈틈이 보여주는 행동과 대화에서 두 사람의 성격 대비도 잘 드러난다.

아마 대다수의 관중은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영화를 욕하고 감독을 욕하며 극장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간 사건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다. 나는 대다수의 헐리우드식 깔끔하고 예쁜 화면에서 미학을 발견하고 충격적이지만 오히려 어떠한 사건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영화에 불쾌함을 갖는 대중들이 더 위선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몇 년 전 보았던 <나에게 오라>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박상민이 머리를 깎고 연기로 승부한다던 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주변 여자들을 쉽게 겁탈하곤 했다. 그 영화에서 겁탈은 가볍다 못해 익살스러워 보였으며, 감독은 그런 저질스런 모습의 뒤편에 있는 주인공의 인간성에 의미를 부여해 감동을 끌어내려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말 변태적 발상이다.

나는 <나에게 오라>를 다시 떠올리면서는 구토가 났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을 보면서는 그 충격에 심한 현기증을 느낌과 동시에 비극적 사건을 현실적 비극으로 승화시킨 감독에게 큰 인상을 받았다. 그가 더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