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하씨를 위한 변명

<유은하씨를 위한 변명>

**이 글은 "복음과 상황 카페"에 올린 것입니다. "복음과 상황 카페"의 도메인은 http://cafe.daum.net/goscon 입니다.

<복음과 상황>9월호에 실린 내 글 중 유은하씨와 관련된 앞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먼저, 본의 아니게 유은하씨에게 또 한번의 결례를 행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사실, 이 말이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변명'의 요지이다. 내가 이렇게 또다시 구태의연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9월에 실린 글이 의도하지 않게 곡해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복상에 글을 보내기도 뭐하고...)

먼저 9월호에 실린 글에서, 나는 유은하씨가 했던 겸손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논쟁을 지켜 본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유은하씨와 나는 서로를 정중하게 대했음을 언급하고 싶었다. (이건 짐작이 아니다. 몇몇 분이 보낸 메일에는 유은하씨와 내가 '앙숙'같이 되었을 거란 짐작의 내용이 몇 개 있었다.) 또한, 치열한 논쟁 가운데에서도 상대방이 소중한 인격적 존재임을 자각하자는 의미로, 다소 개인적인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앞부분에 첨부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까지가 나의 한계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유은하씨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내 글에 대해 이야기도 들을 겸해서 연락을 했는데, 대화 중에 내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9월호에 실린 내 글은 유은하씨의 요청으로 복상에 보낸 비슷한 날짜에 유은하씨에게도 보내졌었다.) 그의 말이, 자신은 괜찮게 생각했는데 같이 본 선배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렇다. 내 실수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인 내용을 언급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쪽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9월에 실린 글에 인용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한마디로 유은하씨가 보낸 e-mail의 내용 중 내가 필요한 부분, 그것도 내 논리가 옳다고 인정했던 부분만을 도려낸 것이다. 실상 어떻게 보면 나는 또다시 내 논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유은하씨의 편지마저 사용한 셈이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유은하씨와 친한 주변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로 유은하씨도 필자와 통화하면서 자신이 보기엔 괜찮았다고 말해선 안될 문제였다. "좀 부당한 부분이 있네요."라고 했어야 옳았다.
이건 짐작이 아니다. 정말로 유은하씨는 몇 번의 얘기 중 나의 논지에 반론을 하고 싶은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왜 없겠는가. 그러나, 6월에는 반론을 포기했고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로선, 아니 유은하씨를 알게 되어 그의 좋은 면들을 확인한 동역자로선 그의 생산적 반론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텍스트 비판에는 한계가 있다. 실상 사회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말과 행동이 차이가 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가 마냥 외치는 소리의 반복일지는 모르나, 우리 사회는 지식인의 글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공개적인 논평에서는 진보인척 하지만 알고 보면 뒤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엔 그렇게도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유은하씨는 완전히 뒤바뀐 케이스였다. 텍스트 비판의 한계가 유은하씨에게도 적용이 되었으나 이건 정반대였다. 참고로 내가 발견한 유은하씨의 글을 몇 개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먼저 <복음과 상황>을 보면 1998년 3월에 "그래, 무슬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거야"를, 4월에 "살아 있으라, 그대 진정 살아 있으라"라는 쉐퍼와 엘룰의 가상대담을 흥미진진하게 엮었었고, 1998년 학복협에서 제작한 것을 1999년 초에 <홍성사>에서 출판한 "대학 생활 길잡이"라는 책에도 그의 글이 실려있다. 글에 실린 자신의 소개란에 따르면, 그는 "예수믿는 고대"의 편집장을 지냈고,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에서 훈련받았으며, 지금은 학복협에서-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돈 안 받는 프리랜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책임감 없는 기독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한마디로 유은하씨는 자기 시간 쪼개서 복음주의 학생운동에 몸으로 뛰는 사람이었다. 단지 잘못이 있다면 5월에 실린 글에서 논리적 비약을 몇 가지 했을 따름이다.

제자도와 연합에 대해 회의적인 논지를 피력한 그의 글, 그러나 현실 참여의 그의 삶.
이 텍스트와 그 배후 삶의 '긍정적(?)' 모순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텍스트만으로 그의 삶이 평가절하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은하씨는 얼마 전의 통화 중에 자신이 논리적인 글을 잘 못쓴다고 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사실 그때 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 말은 어쩌면 자신의 글의 부족함 때문에 책임감 없는 기독인이라는 식으로 그의 삶을 왜곡시킨 내 글쓰기에 대한 '부드러운' 유감의 말이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내 글의 논지는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내 글이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당한 반론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단지, 유은하씨의 글이 너무 많이 나아간 데에 대한 문제제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니 유은하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깨달은 것은 그게 그리 중요한가 라는 물음이었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물론, 중요할 것이다. <복음과 상황>을 보는 독자들에게는 그 저자의 삶이 밝혀지지 않으니 글만으로 판단하는 게 당연하고, 그렇기에 내가 쓴 반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타당한 일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 그의 글을 인정한다는 것은 TNT세대론에 대한 부정적 결과들을 낳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9월호에서도 밝혔듯이 얼굴도 모르는, 생각있는 몇몇 분들에게 좋은 지적이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기에 이 글은 그런 분들은 위해서 쓴 것이다. 내 글에 대해서 긍정한다 하더라도 유은하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지워달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이다. 이런 분들은 아마 유은하씨 하면 책임감 없는 어떤 기독인으로 생각할 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전달력은 생각외로 강하다. 그러나 유은하씨의 경우는 그의 글 이면에 자리한 책임감 있는 한 기독청년의 삶을 함께 드러내 주어야만 한다. 유은하씨에게는 그런 작업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함부로 그의 글을 나무랐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다시 펜을 든 것이다.

아마 유은하씨의 주변 분들이 그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분들이 내 글을 대했을 때, 답답함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거, 너무 심하잖아. 은하가 어떤 사람인데...'라고 아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기숙영씨의 글을 본다면 십분 이해할 만도 하다. 유은하씨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 다 글과 사람을 별도로 생각하고 함부로 글을 쓴 본인의 잘못이다. 부디 나의 변명이 유은하씨를 모르는, 그리고 내 논지에 긍정하여 유은하씨를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