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을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

지난 6월3일은 교회력에 따라 ‘성령강림' 주일로 지키는 날이었다. 성경에서 성령강림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은 사도행전 2장 1~8절의 내용이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의 성령이해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선 성령은 역사적 예수와는 그 존재 양식의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이 육신적 한계를 넘어서서 상대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면 이는 진정 존재 양식의 최고형태를 이룬 것이라 하겠다. 이 존재 양식의 새로운 경지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 존재적 변화를 일으키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처음 일으키는 사태가 무엇인지 사도행전의 기록은 증언해주고 있다. 이들에게 내려 덮친 것은 바람처럼 몰아치는 불길이었고, 그 형상은 갈라진 혀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불길이 가장 집중적으로 힘을 모은 현장은 인간의 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 나라의 언어였다고 증언한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 운동의 폐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방언에 대한 집착과 강요라는 점에서, 성령강림을 기록한 사도행전은 전혀 오해의 여지없이 갈릴리인들이 당시 이들에게 ‘세계'에 속하는 언어들을 토해내고 있다고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 모두를 가로막고 있던 언어소통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바벨탑의 교만으로 분열된 인간을 새롭게 묶어내는 역사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보편언어는 헬라어였다. 이는 로마제국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당시의 중동과 서구를 지배하는 제국의 언어였는데, 그것은 매우 일방적인 언어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모두 헬라어를 통해서였고, 갈릴리를 비롯한 각지의 방언은 인류가 하나가 되는 차원에서의 역할을 갖지 못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각지의 삶의 체험이 인류전체의 구원과 연관을 맺으면서 그 가치를 존중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령강림의 사건은 첫째, 이러한 일방성을 깨뜨리고, 각지(各地)의 삶 그 자체에 접근해 들어가는 놀라운 변화를 입증해준다. 이는 다시 말해서, 선교의 기본 자세가 상대의 삶을 우선으로 하여 다가가는 것을 뜻한다. 나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언어,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방식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로는, 성령에 충만한 이들은 누구와도 막론하고 뜻을 통해내는 힘을 갖는다. 출신과 처지와 경험의 차이가 의사소통의 벽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 모든 인간적 장벽을 뛰어넘어 영혼 한복판으로 진입하는 마음의 길이 열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그냥 가능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들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의사보다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앞세우는 행위임을 성경은 증언한다.

우리가 주목할 세번째는 그리하여 이들이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는 대목이다. 논리적 결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존재 내면에 담아내는 생명의 힘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말하기는 논리보다 감동을 앞세우며, 추궁보다 용서를, 배제하기보다는 품어내기를, 끌어당기기보다는 다가가기를 우선하는 것이다.

성령강림 사건은 그저 자신의 내면적 실존의 문제만 붙들고 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향해 가는 훈련이다. 인류를 가슴에 품는 작업이고 그로써 세상을 성령의 열매로 채우는 일이라는 점을 깨닫고,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다져나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이 시점에서 성령을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역사를 잃어버린 신앙,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신앙, 그리하여 끝내는 자신마저 실종되어 버린 신앙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주간기독교>에 실린 것으로 한종호 목사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