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을 수 없는 우리 노래의 획일성

** 이 글은 월간 <복음과 상황>에 실린 지유철님의 "선택과 옹호" 9월 원고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아, 이 참을 수 없는 우리 노래의 획일성: 내가 만난 가수 홍순관

내가 아는 가수 홍순관은 아웃사이더다. 우리 찬양판의 아웃사이더. 그런 생각과 소리의 미학을 가진 가수를 주류가 인정해 줄 리가 없다. 그는 주류라는 말조차도 싫어하지만.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순관을 어렵게 만났다. 만나주질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의 스케쥴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를 만난 것은 8월 10일 숭실대학교에서 였다. 강영안 교수(서강대 교수·기윤실 집행위원장)의, 목회자를 위한 일일 철학 강좌를 함께 듣고는 저녁 식사시간을 이용하여 학교를 빠져 나왔다. 서로가 저녁 시간의 강의를 들을 수 없는 현실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대학 앞의 분식점에서 쇠고기 덮밥으로 식사를 마친 우리는 쾌적한 분위기를 위하여 산정현 교회로 자리를 옮기는 데 동의했다. 인터뷰는 이미 함께 탄 차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종교다원주의자 홍순관'이란 루머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린 인터뷰에 들어가면서 서로에게 다짐했다. 허나마나 한 이야기는 말자고. 정직하게 보고 느낀 대로 말하자고.

- 극히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종교다운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았다. 이러한 오해나 사상 감정을 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는 말씀이 있다. 나는 변론을 좋아한다. 내가 종교다원주의자라는 수근거림을 나는 2년 뒤에나 알았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이름을 대면 금방 알만한 두 사람이 뒤에서 그런 이야길 하고 다녔나 보다. 이렇게 뒤에서 쑥덕거리는 문화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사내답지도 않고 신앙인의 윤리와도 맞지 않는다. 막말로 뭐 달린 놈들이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하는가 싶어 안타깝다. 왜 뒤에서 하는가? 그리고 근거가 무엇인가? 하지 않은 이야기, 하지도 않은 짓을 왜 했다고 하는가? 말도 그렇지만 특히 글(복상 홈페이지를 의식하는 듯)은 위력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가볍고 진지함이 없는 증거라 생각한다. 나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틀렸다는 것은 정말 유치하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교회 안에서만 노래했다. 내 가슴속엔 예수님이 계시다! 그런 나에게 예수를 믿느냐? 네가 기독교 신자냐? 라고 묻는 것은 네가 밥을 먹고사느냐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근황이 궁금하다.

두 가지 이야길 해야 한다. 우선은 6년 동안 음반을 못 냈다. 나는 가수도 아니다(웃음)! 새 음반을 준비하다가 4곡을 녹음하고 중단됐다. 작년 11월의 일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헌정음반이었는데, 내가 만들겠다고 하니 아무도 후원하겠다고 나서질 않았다. 헌정 음반은 12월, 일본 동경에서 정신대 문제로 열리는 국제 재판의 비용과 앞으로 지어질 기념관 건립으로 모두 내어 놓을 생각이었다. 돈만 날렸고, 아직 중단된 상태다.

- 6년 동안 음반을 못 낸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이다. 치열하게 못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물으면, 일단 음반이 안 팔렸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안 팔리니까 다시 제작할 수 있는 제작비가 문제였다. 나를 후원해주겠다는 사람도 없었고. 아픈 과거지만 그게 내 현실이었다. 게다가 정신대 할머니 돕기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도와달라는 전화가 전국에서 수도 없이 왔다. 선별해서 한 것이 결식 아동 돕기 '소년의 밥상', 지금 월드 비전으로 바뀐, 선명회가 주최한 '훼민24' 등이다. 이런 일로 너무 분주하다보니 자신을 돌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모든 게 다 변명이다.

- 미국과 일본 다녀 온 이야기를 할 찰나에 말을 끊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 어떤 목적의 여행이었는가?

6월에 미국을 다녀왔다. 교포들의 반응은 그 동안의 외로움을 다 보상받을 만큼 컸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내가 좋아하는 김교신 선생님의 아드님을 만난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번 여행은 미국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모금 공연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김진홍 목사님과 함께 LA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교회와 월셔 감리교회에서 위문 공연을 하게 된다. 9월 20-21일에 있을 예정이다. 일본에서의 위문 공연은 11월말에 있을 예정인데 이를 위해 8월초에 일본을 다녀 왔다. 와세다 대학에 계신 김응교 선생의 도움이 컸다.

- 국제 법정 이야길 좀 더 해 달라.

12월 7일부터 일주일간 동경서 열리며, 정신대 피해 관련국인 아시아 7개국과 미국, 독일, 네덜란드가 참석하는 재판이다. 각 나라마다 증인, 변호인단, 민간 단체들로 구성된 150명 정도를 파견할 예정이다. 이 국제법정을 전후해서 문화 행사들로 일본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릴 계획이다. 국제 법정에 들어가는 돈은 나라당 2억 5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돈을 모금하기 위해 다시 일본과 미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공연을 미국까지 확대하려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95년부터 정신대 할머니 돕기 콘서트를 할 때 적은 교회가 큰 교회를 부끄럽게 했듯이(100 교회 중 큰 교회는 매우 적었다) 이번에는 교포들이 우리 국민들을 부끄럽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게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둘째는 우리의 역사와 정서, 그리고 치열함을 잊고 사는 교포들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인 교회들에서 치열함은 보기 어렵다. 이해는 한다. 그곳은 외국이니까. 그래서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던져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미국 방문 때 그들은 말했다. '공연을 보면서 찬물에 세수하는 기분'이었노라고.

- 용인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왜 거기가지 흘러갔는가?

먼저 가족 이야길 하자면 아내, 다빈이(10살), 그리고 다솔이(8살)와 함께 산다. 세 딸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다(웃음). 정든 부산에서 과천으로 이사한 것이 90년 11월이었다. 나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과천은 조용하고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갔던 것이다. 조금 있으니 도시가 복잡해져서 분당으로 피했다. 그러나 분당도 곧 시끄러워져서 용인의 산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호화 주택이 들어서 있는 곳인데 우리 집은 '호화불량주택'이다(웃음)! 호화주택처럼 보이는 불량 주택. 용인으로 간 게 2년 전 일이다. 이번엔 원했다기보다는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함께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동안 음반을 못 만들었고, 정신대 할머니 돕기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글쓰고 작곡하겠다고 들어간 것이다. 결과적으론 더 어려움을 당했다. 건축을 도맡아 하던 사람이 도망을 간 것이다. IMF라는 한파의 와중에 말이다. 소유의 아픔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시간들었다. 가벼움(소유에 대한)의 진리를 너무 절실하게 공부한 2년이었다. 2년 동안 노장(老壯) 사상과 성경을 참 열심히 읽었다. '가만히 있어라!', '비워라!' 따위의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사색했다. 소유의 아픔! 정말 절실한 것이었다. 고백하련다. 아주, 공식적으로 말이다. 나는 현금이 없는 사람이다. 통장의 공개를 원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더 버릴 수 없는 만큼의 삶의 살고 싶다.

- 찬양이야길 좀 하자. 나는 우리의 찬양과 찬양 문화 이 모두에 심각한 왜곡이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 찬양의 상태를 어떻게 보는가?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 이런 이야길 많이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를 이끌어 온 노래는 70년대의 가스펠이나, 80년대의 경배와 찬양, 90년대의 CCM이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돋보기를 쓰고 불러 왔던 무곡(無曲)찬송가! 나는 그것을 한국 교회의 노래로 이해한다. 음악을 논할 수도 없는 노래지만 한결같음이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쉼 없이, 그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불려져 온 노래!
그러나 젊은이들이 즐겨 불러 온 찬양은 천편일률적이다! 이건 '교회가 랩이나 락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따위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모두 똑같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건 창조의 파괴다. 각 사람이 가진 생각, 각 교회가 지닌 멋과 맛을 다 잃어버리고 획일화되는 것이다. 경배와 찬양이 80년대 중반에 수입되었다. 그 때를 기점으로 화요 찬양이나 목요 찬양 없는 교회가 없을 정도였다. 이건 있어선 안 될 혁명이었다! 웃기는 것은 어제까지 가스펠 가수였던 사람이 경배와 찬양이 뜨니 자기 음반에 경배와 찬양을 넣고, CCM이 또 붐을 일으키니 슬쩍 CCM 가수연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치함이 우리 찬양의 현실이다. 들어보면 발전이 없고 똑 같은데 껍데기 포장만 계속 바꾼다. "자기가 부르는 게 무슨 노래냐?" 이게 핵심이 아닌가? 사실 CCM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가락이 아니라 메시지다. 우리 나라에 통용되는 CCM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메세지가 없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수 사랑해요', '온 평생 주님을 찬양해요'와 같은 것 외엔 뭐가 있는가? 멜로디와 형식만 흉내내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퇴보다. 차라리 무곡 찬송가풍이 더 낫다.

- 거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홍 형은 찬양이란 말보다는 노래를 선호하는 데 어떤 연유 때문인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랐지만 나는 아직도 찬양 사역자란 말이 익숙하지 않다. 아니 거북하다. 노래, 노래꾼! 이게 좋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주신 노래가 있을 뿐이다. 노래와 찬양을 가르기 시작하면 벽을 쌓게 된다. 물론 장르는 있다. 종교가 갖는 노래의 형식이나 정서도 있다. 그러나 노래는 하나이다. 사람에게 정직함과 감동을 주고 사람들의 생활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또는 하나님을 향하여 열리게 해 주면 되는 게 아닌가? 본질? 속성에서 가요나 클래식이나 가스펠이나 뭐가 다른가. 가르지 말자. 또 하나의 벽을 더 만들뿐이다.

- 로잔 언약 중에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어야하지만 세상이 교회 속에 있으면 안 된다'란 말이 있다. 이제 표절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 교회는 찬양 뿐 아니라 설교, 건축, 교회 성장 방식 등등이 이미 갈 데까지 갔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화란의 미술사가 로크마커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양떼를 그렸다고 해서, 지팡이를 가진 목자를 그렸다고 해서 모두 성화가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복음적이냐, 또는 하나님 나라가 들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 복음성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진지한 가요가 값싼 복음송 보다 백 배 낫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 찬양은 껍데기다. 단어 몇 개를 베꼈다고 표절이 아니다. '얘네들이 지금 뭘 노래하고 있느냐'를 전체 맥락 속에서 살펴야 한다. 경배와 찬양을 보면, 모든 노래의 가사들이 극단적으로 똑같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거야말로 표절이다. 창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의 숨이 아니란 말이다. 94년에 기윤실하고 했던 운동이 착한 노래였는데 착한 노래란 내 생각과 숨으로 부르는 노래다. 핑크 플로이드의 뮤직 비디오를 봤다. 학생들에게 똑같이 하얀 옷과 가면을 씌워 가지고 일렬로 공장으로 들여보내는 장면이 있다. "바밤 바 바밤 바밤바....' 이렇게 음악이 나오면서 아이들이 기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얼마 후 아이들이 쏘세지가 되어서 나온다. 엄청나게 잔인한 뮤직 비디오다. 개성을 말살하는 이 시대 문화와 학교에 대한 고발으로 읽었다. 우리 나라의 찬양이 가지고 있는, 소위 중, 고 대학 및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와 핑크 플로이드의 뮤직 비디오가 고발하는 현실이 너무 유사하지 않는가.

- DJ. DOC를 인터뷰하면서 나는 우리 크리스천의 노래를 생각했다. 개인의 삶과 고민이 빠진, 또한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의 문제에 침묵하는 기형적인 찬양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담임 목사직 세습이나 교단의 금권 선거, 자신들의 이기주의에 대해 고백하고 항거하는 노래도 좀 만들어서 불러주길 희망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어떤 바람'이란 내 노래가 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고 꽃에 불면 꽃바람인데 지금 너를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이냐 묻는 노래다. 굉장히 시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가사는 공허한 말장난이 아니다. 치열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혹은 이웃의 아픔이 있고 우리의 정치 상황이 있다. 지금 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상황이나 이웃의 아픔이 지나가는데 네겐 이게 뭐냐고 묻는 것이다. 이 노래는, 그러니까 고도의 시적인 언어로 우리 시대의 아픔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노래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지 단어가 아니다.

- 찬양사역자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나는 소위 찬양 사역자란 용어도 용어지만 저분들의 활동,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의식에 대해 태클을 걸고 싶을 때가 많다. 언제부터 찬양 사역자가 70년대의 부흥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권위를 갖기 시작했는가? 왜 찬양 사역자가 영적 권위마저 주장하려고 하는가? 나는 소위 경배와 찬양 집회에서 할렐루야를 연호하는 리더들에게서 파시즘을 느낀다. 대단히 못마땅하고 서글프다. 겸손하게 노래만 할 수는 없는가?

지금 찬양 사역자의 문제는 세상 문화 혹은 대중 문화에 대한 엄청난 콤플렉스이다. 얘네들은 기를 쓰고 세상 문화를 따라 잡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단코 따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공연히 허튼 짓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의상과 춤을 가지고, 그리고 어떤 노래와 쇼맨십을 가지고 세상 문화를 따라 잡겠다는 것인가? 유행하는 풍이나 장르를 발빠르게 배우고 적용한다고 해서 세상 노래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세련된 것도 열린 찬양도 아니다. 열린 찬양?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열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우리의 시대 상황을 향하여 열려 있다는 의미다. 교회가 세련되게 보이는 것이 열렸다는 의미다? 천만에!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다. 옛날의 <씨알의 소리>나 <현존>을 보면 너무나 단순한 편집이지만 정말 두고두고 읽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틀림없이 <현존>이나 <씨　의 소리>가 주는 단호함, 절제와 소박함, 정직 같은 것이 내용 뿐 아니라 편집 속에도 스며 있다. 마구 흉내낸다고 해서 열려있는 게 아니다. 그게 표절이고 깊은 콤플렉스의 자기 표출이다. 찬양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갓 시작한 후배들을 보면 흉내내기에만 매달리는 친구들이 너무도 많다. 가요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기들은 다 다르다고,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만. 젊은이들이 총체적으로 자기를 볼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자기와 교회를 관조적으로 볼 수 있는 초점과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밖으로 나가서 자기를 관조(觀照)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따로 있다. 그것에 대한 자기 숨소리를 발견해야 한다. 메세지도 그렇고 가락이나 장르도 그렇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일상을 동원해서 창조적인 노래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한 변화는커녕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다. 옷도 언어도 가락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굉장히 큰 힘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내게 있다. 나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 누굴 만나든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면 주로 뭘 하는가?

이런 이야기하면 매장 당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가로운 게 좋다. 가만히 있고 싶고, 그걸 가장 즐긴다. 가만히 있으면서 나무를 쳐다보고, 새 소리 듣고, 흙냄새 맡고 풀을 뜯고 하는 게 너무 좋다. 그러나 여기서의 한가로움은 치열함을 넘어 있는 거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다. 윤호영이란 수필가가 있다. 우리아버지 친구고 피천득 선생님과도 친구다. 내 생각으로 그 분은 우리 나라 최고의 수필가다. 피천득 선생님도 그렇다고 하셨다. 이분이 '한가로움이란 시간을 마주 대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말을 했다. 이 짧은 한 문장 속에는 시간과 역사와 일상이 한 개념으로 온다. 한가로움이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봄과 바라봄과 만남이다. 깊은 묵상으로 일상, 역사현실, 시간, 이웃, 사회, 정치 등등을 돌아보는 것이다. 한가로움 안엔 '복음'과 '상황'이 다 들어있다(웃음). 솔직히 한가로울 때가 일할 때보다는 편안하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시간은 노래하고 이야기할 때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시간이 가장 좋다. 노래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내가 막 나온다.

- 지난 달 만났던 김규항 편집주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은 시간이 주어지면 그저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기도 하고 밀린 책을 읽기도 한다는 데 자신은 그저 우두커니 있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 때의 김규항 표정이 생각난다. 김규항 이야길 했더니 동지를 만났다는 사실을 반기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 가지 빠진 게 생각난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려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는 것은 치열한 싸움이다. 가만있는 것 같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비바람, 햇볕, 무료함 등등을 다 견디고 나서야 나무는 그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늘을 만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살아 남아야 그늘을 만들 수 있다.

- 복상 홈에서 한창 뜨거웠던 송정미 논쟁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송정미가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음악성을 높이 산다. 처음 음반을 냈을 땐 참 좋았다. 하지만 요즘의 송정미에 대해선 안타까움이 앞선다. 지난 4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포스터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평소 생각이 궁금하다.

나는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가능한 가서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내 공연에 저들은 아무도 안 와 주지만. 여러 사람의 콘서트나 공연을 다녀 왔다. 송정미의 사진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진과 노래가 다르다고 했는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들을 땐 똑같다. 그의 '느끼함'이 그대로 사진에서도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왜 오버하는지 안타깝다. 시대의 아픔을 담은 노래를 한 곡 했다고 시대를 아프게 사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삶의 내용이다. 물론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가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모두가 시대를 노래할 필요는 없다. 어떤 후배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형은 정신대 노래가 맞느냐? 이게 뭔 말인가. 나는 내 노래가 일상이다. 노래말이 정신대을 지칭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이 정신대 할머니들과 연대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가령 CCM을 부르는 가수와 내가 똑같은 곡을 가지고 무대에 섰다. 그렇더라도 정신대 할머니들의 반응은 다르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의 삶은 온통 정신대 할머니들과 연대해 있고 저 분들 생각은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김민기가 4집까지 음반을 냈다. 그런데 사진이 1집부터 4집까지 똑같다. 그것이 감동을 준다. 내 생각은 왜 오버하느냐고 묻고 싶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되지 왜 팔리고 안 팔릴 생각을 그렇게 하는 지 모르겠다.

사실 홍순관을 인터뷰하면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홍순관이 생각하는 홍순관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짧은 글짓기를 청탁하고 싶었다. 홍순관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전공인 미술을 버리고(?) 음악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 아쉬움을 가지고 물었다.

- 홍 형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노래는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여백의 미학이다. 나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10살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화선지에 붓으로 글을 썼다. 그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동양화에서 여백이 말하는 바가 얼마나 큰 지를 배웠다. 나의 대사 중에 "아, 마지막은 침묵이리니. 소리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침묵이리니"라는 고백이 있다. 나는 내 노래 속에 이 여백을 두고자 한다. 아니, 하나님의 침묵을 담고자 한다. 지금 우리 대중 음악계든 편곡이나 연주가 다 똑같다. 몇 사람이 연주와 편곡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획일성이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백건우나 정명훈과 함께 음반을 만들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피아노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경수라는 피아니스트를 만난 건 나로서는 참 행복한 일이다. 그는 피아노의 여백을 아는 연주자다.
두 번째로 숨같은 진실을 담은 노래를 지향한다. 아버지는 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걸으면 신도 함께 걷고 내가 숨을 쉬면 신도 함께 숨을 쉰다"고 가르쳤다. "내가 돌아누우면 신도 돌아 눕는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와 하나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일깨우셨다. 나는 숨 같이 진실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나는 나의 노래를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 노래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노래를 넘어서고 싶다. 노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다면 노래가 뭐냐? 찬양이 다 뭐냐? 만약 어떤 사람이 진정 그 분의 제자라면 노래는 절로 된다. 일상이 정직하다면 절로 나오는 것이 노래다.

97년으로 기억된다. 나는 찬양을 위해 왕성교회를 찾았던 그에게 물었었다. '연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배역이 너무 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문성근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중단한 것은 그 이미지로 자신이 고착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 알고 있다. 혹시 정신대 할머니 돕기를 너무 많이 하다가 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아닌가?' 그걸 너무도 잘 아는 그였지만 그는 계속 유사한 일을 하고 있다. 홍순관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100교회 투어를 하는 동안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이 "할머니들을 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잘못을 고백하시던 수 많은 담임 목사님들의 참회 기도"라고 했다. 그걸 통해 자신이 너무도 큰 감동과 격려를 받았다는 뜻밖(?)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그저 노래만 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무대를 내려오면 그는 목사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성도였다.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홍순관은 깊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를 마주대하면서 나는 노래와 기타 연주보다 더 아름다운 그의 일상과 삶을 볼 수 있었다. 홍순관을 만난 후 내 가슴속에서 다시 분명해 지는 것이 있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업적을 이룩하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평범한 진리의 확인이다. 생활의 아름다움이 노래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 다시 말해 아름다운 일상만이 향기가 있는 예배를 보장한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아무쪼록 새 음반의 중단으로 그의 인한 아픔이 좀 더 성숙하고 단아한 모습의 노래로 엮이고 모아지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지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