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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아지신 하나님?

　

서진한 (기독교 사상 주간)

　

이 가을 내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대립으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 문제니, 국가보안법 문제니, 신문방송법 문제니, 사립학교법 문제니 해서 시비할 현안도 많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지금의 의견대립이 현안을 최적의 방법으로 풀어내기 위한 과정은 아닌가 보구나 하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토론하고 비판하여 더 나은 안을 도출하려는 생각보다는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앞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정권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른바 보수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세력들이 선언문을 발표하고 머리띠를 두르고 나서서 시위를 합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기독교총연맹과 일부 대형교회들도 '구국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몽매한 신도들을 동원하여 보수단체들의 정치집회에 뛰어들었습니다. 도심 길거리에서 국가보안법 개폐와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고 친미를 주장하며 "김정일 사탄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한기총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던 한 은퇴목사조차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이며 숭미적인 집회라고 비난했겠습니까? 그 집회를 주도한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은 이전 독재정권의 수혜자들이거나 그 정권을 위해서 기도회를 여는 등, 정권과 유착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학살한 "전두환 장군"을 위해서도 조찬기도회를 열어 복을 빌 정도로 신앙의 아량이 크고 깊은(?) 사람들이 아무리 맘에 안 든다 하더라도 현 정권을 향해서는 대규모 구국 기도회와 시위로 맞서는 이 현실이 말입니다.

구국 기도회가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까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기도회를 연다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그것이 무슨 기도회입니까? 그것은 시국집회이자 시위입니다. 잔인한 학살 앞에서는 축복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 앞에서는 머리띠 두르고 주먹 쥐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리고 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신다며 입만 열면 '기도'를 외치던 사람들이 교회에서 기도할 일이지, 왜 거리로 나와서 사람들이 보라고 시위를 해야 합니까? 그래서 대다수 언론들은 기존의 불의한 정권하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기독교를 반발하고 나서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기독교"라니요? 기독교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입니다. 그들의 구국기도회에 어찌 기독(基督),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그들의 행동은 기독교를 반민주적이고 수구적이며, 비이성적인 이미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기독교 인구의 감소는 사회적으로 각인되고 있는 이런 기독교의 시대착오적인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민주화한 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안에, 엄혹한 시절, 인권과 민주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던 예언자적 기독교의 기억은 사회적으로 묻혀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행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이해관계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지독하게 사랑하고 북한을 죽이도록 싫어하고 노무현 정권은 꼴조차 보기 싫어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현실에 눈을 감고서 기도하는 자에게 무조건 복을 주시는 복-기계이셨다가 이제는 세상이 붉게 물든 것을 보시고 분연히 일어나 보수의 깃발을 높이 든 분이 되셨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신의 판단이라고 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신의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실, 사람이란 보수적인 견해를 가질수도 있고 진보적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미래 지향적일 수도 있고 과거 지향적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신의 견해를 신의 이름으로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하찮게 여기는 것, 업신여기는 것,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을 자신의 뜻과 의지에 맞추어 재단하고 조종하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것이 작금의 한국 기독교의 근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사회참여적이냐 교회지향적이냐, 선교냐 전도냐 하는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가장 빠지기 쉬운 잘못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쉽게 저지르는 죄이자 가장 큰 죄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그 일을 경계하고 또 경계합니다. 누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장담하겠습니까. 다만 조심하고 조심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걸음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뿐입니다. 이 가을이 우리 모두 현실의 악다구니에서 물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고요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독교 사상> 2004년 11월호 권두언에서 부분 발췌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