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복음주의권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복음주의권의 가벼움

: 문제의 본질과 상황은 무엇인가?

** 이 글은 "복음과 상황 97. 12."에서 한철호님의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노예선 선장 이야기

한 선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다가 싣고 가서 파는 선장이었다. 그는 노예를 실은 배가 오랜 기간 항해하는 동안 안전한 귀향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 어느 날 그는 간음하지 말고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읽고 있었다. 선장실에서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부하 선원이 한 아리따운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선장님, 이 여자는 노예 중에서 가장 예쁘고 건강한 자인데, 오늘 밤 이 여자를 데리고 주무시죠."라고 그가 말하자, 선장은 곧 화를 벌컥 내며 부하 선원과 그 여자를 내어쫓았다. 그리고 그는 곧 성경을 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오늘도 간음하지 않게 도와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을 잘 비유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노예선 선장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직면해야 할 문제는 간음하지 않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가 먼저 직면해야 할 문제는 노예를 잡아다가 파는 일이다. 물론, 간음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하나님 앞에 직면해야 할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주변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들고 나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예선 선장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서 오히려 주변적인 문제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음주의 대중교회 신학

미국의 대중적 복음주의교회 문화를 비판한 마크 놀(Mark Noll)은 한 글에서,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 교회가 몇 가지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와는 담을 쌓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 가운데 하나로 복음과 지성의 문제에서 복음주의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주의라는 말이 매우 포괄적인 신학적 스펙트럼을 포함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구속자로서의 유일성 그리고 이것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영역에서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삶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복음주의자들이 지금 열심히 활동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삶의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복음주의 교회들이 세상 삶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지적이며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참여하기보다는, 현재의 미국 대중문화의 대중적 세계관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교회 안에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복음주의 신학의 토대라고 말할 수 있는 16,17세기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의 시대에는 신학자들이 그들이 깨닫게 된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교회의 전통들에 대해서 인내하면서 당대 최고의 사상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때로 그것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했다. 그 결과 능력 있게 의사 소통되는 신학, 그리고 성경으로부터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는 신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주의 신학은 이런 점에서 너무나 나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성경의 권위에 대한 헌신은, 한편으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자유주의 그리스도인과 세속 학자들의 도전과,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무시한 성경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신학 사이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점차로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대중적 복음주의 교회가 관여하는 삶의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일의 영역을 관찰해 보면, 비교적 대응하기 쉬운 문화적 부분에만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본질적으로 혹은 근본적으로 주되심을 그러내야 할 부분은 제쳐놓고, 접근하기 쉬운 문화 혹은 쉬운 삶의 영역에서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실제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들이 그들의 세상 안에서의 삶의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앙과 학문(진리), 정치, 경제, 입법등의 영역에서는 별로 활동하지 않고, 비교적 쉬운 문화 즉 상담, 자녀교육, 가정 세우기, 문화사역 등에는 놀랍게도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노예선 선장의 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지금 우리는 간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문화-급진적 영적 개인주의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복음주의권 교회들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누가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는 교회인가에 대한 문제는 복잡한 문제이므로 여기서 논할 수 없고, 단지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대부분의 교회를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는 교회라고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한국 교회 안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현재 한국 사회라는 선교해야 할 세상에 대해서 직면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가지고 대응하기보다는, 미국 대중적 복음주의 교회 문화가 만들어 낸 사역 혹은 문화를 수입해 가져다가 아무런 여과 없이 그냥 적용한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 미국 LA근교에 있는 S교회의 교회 성장 방법이 유행이다. 그 교회의 성장 비결이 담겨있는 책자가 날개 돋힌듯 팔리고, 어떤 기관인지 여행사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성장하는 10대 교회 방문 여행단을 모집하는 광고도 봤다. 그런 교회에 가보면 한 무리의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예배 광경을 녹화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빈야드 운동이 일어나자 곧 한국에도 그 운동이 일어나서 이단이라는 둥 아니라는 둥 난리가 났다. 한국 교회 안에 늘 성령운동, 교회 성장운동이 있어왔다. 오늘날의 교회 성장과 성령운동 하면 한국교회가 원조가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우리의 상황과 현실에 적실성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들의 문화와 방법론을 그냥 수입해 온다. S교회 등 미국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잘못 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교회를 배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 성장이 주춤한 것이 또 다른 방법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성장이 둔화 혹은 중지됐다면, 그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직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외국의 성공적인 성장 모델이 좋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최근 우리 나라에서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전도가 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한국교회는 그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할 능력이 없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왜 더 이상 전도가 안 되는가? 어쩌면 우리 가운데 쉽게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다 전도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한국 교회가 전도해야 할 세상은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더욱 복잡하고 더욱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그 세상의 사상과 문화와 이론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부터 한국교회에 상담, 가정사역, 치유사역, 찬양사역이 유행처럼 일어났다. 다 좋은 일이다. 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고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삶의 영역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이런 쉬운 문화(물론 상담, 가정사역들이 무시해도 되는 사역이라는 말이 아니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사역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가정과 삶에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어려운 부분에는 덜 관심을 가진다. 치유와 올바른 상당교육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처를 치유 받은 이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나보다 더 큰 상처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장차 세상 가운데서 공의와 진리를 알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정작 그 세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점차로 교회는 성도 개인의 내면 문제 혹은 공동체 내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최근에 널리 읽히는 대부분의 신앙서적은 치유와 상담, 자기 관리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이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출발점이다. 치유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년 내내 그 주위에서 맴돈다. 가정생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다음 해에도 또 여전히 같은 문제를 가지고 또 세미나에 온다. 모든 교회의 활동들이 교회 구성원들의 치유, 상담, 자기 관리, 내면세계 등에 관련된 사역이다. 이런 사역들로 어떤 교회들은 일주일 내내 교회가 북적거린다.

교회에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수많은 가정생활 세미나를 하고 있지만, 그 어느 교회에서도 낙태로 하루에 4000명씩 죽어 가는 태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세미나에 오기는 하지만, 자기가 상처 준 세상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큰 교회에서는 주중에도 이런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타고 몰려든다. 교회 주차장뿐만 아니라 인근 도로까지 다 점령한다. 자가용을 타고 교회에 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가용마다 한사람씩만 타고 온다. 같은 동네 같은 구역에 사는 주부들끼리 카 풀(car full)해서 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교회이다"라는 책을 쓴 찰스 콜슨은 이러한 현상을 '급진적 영적 개인주의(radical spiritual individualism)'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대중적 복음주의 교회의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정말 더 이상 '상황'이 없는가?

오늘날 우리 청년 기독인들 사이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상황(context)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가까운 시점만을 두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기독 청년들은 상황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형적으로 정치와 사회와 대학에 자신들이 대응해야 할 상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이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는 개인과 공동체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오늘날에는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문화적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명제 아래 기독청년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기껏해야 찬양사역 혹은 기독교 문화사역 정도이다.

오해하지 말라. 찬양사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상황이 있다고 느낄 때에는 그들의 찬양에서 자신의 내면의 문제와 더불어 국가와 민족, 정의와 평화를 노래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모든 찬양이 '나'와 관련된 것이다. 세상의 노래는 온갖 퇴폐적이고 탈 사회적인 가사로 채워지는데, 우리끼리 모여서 자기 도취적인 가사로 된 노래만 부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통령 선거 때 공정선거 감시단을 만들자는 이야기들이 청년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농활에 참여하자는 이야기가 기독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철거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역은 젊은이들의 시선 안에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로 상황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상황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단지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미 우리들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의 7배나 더 강력한 사탄의 전략이다. (눅11:26)

나는 왜 오늘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해외선교에 헌신하고 나서는 데도, 세계선교를 주도하겠다는 한국 교회가 그들을 평신도 선교사로 보내는 것에 대해 문을 열지 않고 전통적인 목회자 선교사만을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왜 고등학교 때도 한 반에 60명이 넘지 않았는데, 신학대학원에서 수백 명이 한 강의실에서 마이크로 전달되는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나는 왜 기독교가 진리라고 하면서 기독 대학생운동 단체들이 학생에게 전공을 접어두고 단체를 세우는 일에만 전념하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나는 왜 교회가 더 이상 부흥되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우면서 젊은이들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무엇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고, 무엇이 더 시급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인지에 대해서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