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에 감염된 대중문화의속살 <대중문화의 겉과 속Ⅱ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9000원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정치·사회 문제 비평가로 이름이 높지만, 대중문화에 관한 책도 여러 권 펴낸 학자이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은 그가 쓴 대중문화 이론서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책인데, 1994년 초판을 낸 뒤 1999년 전면개정판을 펴낸 바 있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Ⅱ>는 먼저 나온 책의 속편이자 새로 나타난 대중문화 현상을 진단한 별도의 책이다. “대중문화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대중문화를 다룬 책이 5년 묵었다면 그건 역사책이다”라는 지은이의 믿음은 따로 책을 낸 이유를 설명해준다.


지은이의 글쓰기의 형식적 특징은 광범한 인용에 있다. 인용에서 시작해 인용에서 끝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 인용의 연쇄고리를 통해 지은이 자신의 논지를 드러낸다. 더 뚜렷한 특징은 그가 따오는 문장과 문단의 원본이 대체로 신문·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에 있다는 점이다. 다루는 주제가 대중문화인 까닭도 있지만, 사회적 담론의 표면을 이루는 대중매체에서 어떤 시대적 징후를 읽어내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미 확립된 이론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은이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어빙 고프먼·장 보드리야르, 철학자 미셸 푸코 등의 이론을 예비적으로 살피고 있으며, 본론에서도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설명의 도구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전 사회의 대중문화화’라고 할 정도로 대중문화가 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 확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그가 꼽는 것이 소비문화와 사이버문화의 창궐이다. 소비문화는 과거 산업자본주의를 대체한 소비자본주의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문화의 특징을 개념화한 것이 이를테면, 어플루엔자(Affluenza)다. 풍요(Affluece)와 유행성 독감(Inffluenza)의 합성어인 어플루엔자는 풍요사회에 번진 유행성 소비열풍을 가리킨다.

이 신종 바이러스가 한국 땅에 상륙해 토착화한 것이 최근의 ‘명품 열풍’이다. 명품에 대한 열광은 사회학적으로 의미심장한 암시를 품고 있다. 일찍이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이 <유한계급론>에서 설파한 ‘베블렌 효과’를 ‘명품 열풍’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취향과 패션이 계급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상이 된 시대에 명품이야말로 이 표상으로 기능하기에 적합한 상품이다. 베블렌은 “비싸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는데, 유한계급이 ‘고가’의 사치품에 집착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말이다.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심리를 티내기(구별짓기)라는 부르디외의 개념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사위계급이라는 티를 냄으로써 하위계급과 자신을 구별짓는 데 유용한 물건이 바로 명품이다.

중류계급이 상류계급을 자꾸 모방하는 상황에서 ‘티내기’는 ‘티내지 않기’로 나아가기도 한다. 가령, 호사품의 상표를 감춤으로써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 사이의 결속감을 높이는 은밀한 전략이 그것이다. “베르사체는 10여m 떨어진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지만, 구치는 5m쯤 접근해야 알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구치가 더 비싼 제품이다.” 카르티에 안경 상표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든데, 그건 이 제품이 최고품임을 알려준다.

인터넷을 발달과 함께 급속히 퍼지고 있는 사이버문화는 역설(패러독스)로 가득차 있다. ‘데이터 스모그’로 지칭되는 ‘정보의 과잉’은 ‘관심의 빈곤’을 촉발한다. 너무 많은 정보에 질린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로만 시야를 좁혀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로운 분자’가 되어간다. 특정 분야에서 인터넷은 기존의 권위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증진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공통 주제에 대한 무관심을 낳기도 한다. 이 밝음과 어둠의 혼재에서 밝음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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