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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강준만

　

/허미경

80년대 지속됐던 '야만', 무엇으로 가능했던가

언론학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씨의 <한국 현대사 산책 80년대편>이 5·18광주항쟁 23돌을 앞두고 자그마치 1200여쪽 분량의 책 네 권으로 출간됐다. 지난해말 세 권으로 묶어냈던 <…70년대편>이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를 씨실, 날실 삼아 지난 1970년대를 현재 속으로 불러냈다면, ‘80년대편’을 읽어내는 열쇠는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이다.

우리의 80년대는, ‘빼앗긴 서울의 봄’과 ‘광주 학살’로 시작되었다. 80년대는 프로야구로 상징되는 오락, 여가, 소비 문화와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처음 시작된 총천연색의 시대이기도 했다. 때맞추어 ‘3저 호황’이 가져다준 풍요의 길목에서 정의사회 구현을 앞세운 5공화국의 “부패 사회 구현”이 이뤄졌고, 민초들은 하나의 생존전략으로 “부패의 생활화”를 체득했다.

광주민중항쟁이 신군부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 집행에 맞선 가장 강력한 저항이었다면, 81년에 유치가 확정되어 대대적으로 선전된 88 서울올림픽은 광주학살의 기억을 유폐시키고 지우려는 자들의 무기였다. 광주는 피를 흘렸고 그 피는 서울올림픽이라는 마법의 주문에 밀려 급속히 잊혀졌다.

그렇다면 광주학살은 오직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일당만의 만행이었던가 또 학살과 학살에 맞선 항쟁의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고 잊혀졌던가 “전두환 세력은 박정희 18년 독재가 낳은” 자식이었으니, 광주학살은 어떤 면에선 그 오랜 호남차별의 소산이기도 하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80년대에 이미 ‘광주’는 “잊혀졌으면 하고 바라는 과거였던 반면 ‘올림픽’은 미래였다. 말하자면 광주학살과 신군부에 맞선 항쟁은 “중산층 신화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담론에 파묻혀 버리고 한국인은 중산층 신화 속에 ‘경제동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80년대의 한국에서 “‘중산층’의 체제친화적 보수성에 심리적 면죄부로 작용한 건” 바로 ‘국가주의적 탐욕의 문화’라고 지은이는 요약한다.

그 길에서 ‘5·18 광주’는 한 지역의 문제, 곧 ‘호남’ 문제로 치부되었다. 학살을 당한 호남인들이 자신들의 한을 ‘김대중’으로 의인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수 비호남 다수 한국인들 역시 광주학살과 호남차별 문제를 ‘김대중’으로 의인화시키는 데 공모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 와중에 실종된 건 광주의 아픔과 한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부 비호남 한국인들의 탐욕 또는 무지에 대한 책임이었”으며 이후 “그 정체불명의 지역감정은 민주화와 개혁을 잡아먹는 블랙홀로 기능하면서” 오늘날까지도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학살에 대한 책임이라는 화살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신군부가 썼던 전략은 정치학자 최장집씨가 지적했듯이 이른바 ‘적의 창출’ 효과다. 호남 대 비호남 구도 속에 호남을 악용한 ‘적을 창출’하는 과정 속에 광주의 진실은 은폐되었다. 곧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은 한마디로 호남배제 감정”이며 “왜 호남을 배제하는가의 요인은 광주항쟁으로부터 심화되어왔는데, 이런 차별적 감정을 조작함으로써 일종의 역효과, 곧 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통합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 5월 ‘광주’의 고통이, 이른바 ‘관객의 부재’로 인한 고통, 곧 “가장 무서운 것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 곳에서는 모른다는 것”이었던 것처럼 이후 80년대에서, 광주의 진실 은폐는 지역감정의 망령 속에 계속 재생산되었던 셈이다. 이것은 물론 신군부와 밀월을 즐겼던 언론의 공조 속에 가능했다. “80년의 광주뿐만 아니라 80년대 내내 있었던 수많은 ‘광주들’, 즉 관객의 시선이 차단된 채 밀실에서 이뤄진 야만적 고문과 살인행위! 그것이 언론에 의해 보도될 수 있었다면 그 학살의 주체인 신군부 정권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오래도록 권력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은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때로 눈물을 돋우는 고통의 기록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단행본 책들을 마치 신문 스크랩을 하듯, 역사적 사건의 현장들을 모자이크해나가는 작업을 통해서, 정치, 사회, 언론, 문화 등 각 분야의 역사적 사건들, 그 80년대의 생생한 표정들을, 그리고 진실들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가 80년대를 들추어내는 작업은 80년대가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정리하고 넘어가려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야만의 80년대를, 우리들의 망각과 몰이해 속에서 끄집어냄으로써, 지은이의 말마따나 “역사의 현재화를 염두에 둔 현실 개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현재와 미래 문제들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도 가능”하리라는 아주 상식적인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그것이 상식적이라는 것은, 가령 “광주를 학살로 내몬 결정적인 과오”라는 식으로 비판받는 80년 5월 학생운동 지도부의 서울역 회군에 대해서도, “그것이 당시 학생지도부의 과실이라면, 인간, 아니 한국인이라는 동족의 이성을 믿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읽힌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