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리고 비평

얼마 전 마음이 흐뭇한 책을 한 권 만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월간 <인물과 사상>이란 잡지에서 "홍세화의 파리 통신의 필자이기도 하다. 좀 망신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불과 몇 개월 전에 홍세화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되었던 글은 "홍세화의 파리 통신"이란 이름으로 실렸던 "피자헛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였다. 그 글에서 홍세화씨는 정작 파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별 인기를 끌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미국에서 들어 온 담론이 한국에서 극성인 현상을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음식이, 미국에서 페스트푸드로 둔갑한 피자헛으로 묘사했다. 이번에 접한 <쎄느강은...>은 또 한 번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이었다. 특히, 내게 있어 무의식적으로나마 맹목적이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되짚어 보는데 일조했다. 쉽게 얘기해서 또다시 나의 무지함에 탄식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저자가 번역한 다른 책,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주의깊게 읽고 있다. 프랑스의 토론 문화에 호감을 느끼면서...

워낙 좋은 내용이 많은 터라, 발췌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는데 갑자기 또다른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란 다름 아니라 타인의 비평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요즘 사람들은 비평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논지에 대해 잘 정리된 글을 쓸 기회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듯 하고. 아무튼 나는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좋은 글, 혹은 좋은 토론 글들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다독,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글들을 많이 읽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이 그 글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비평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비평들을 넓게 참고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처음 텍스트를 가지고 그 텍스트에 대한 비평 글들을 많이 접하다 보면, 일정한 텍스트에 나름의 비평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그런 후에 한 번 이런 저런 글들을 적어 보는 것, 그것이 글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항상 새로운 책들을 접할 때마다 나의 한계를 실감한다. 또한 나의 편협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것들을 초석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스스로에게 도전해 보곤 한다. 그리고 동일하게 결심한 가치에 대해서 한 번씩 정리해 보곤 한다.

여기에는 홍세화씨의 책 <쎄느강...>에 대한 비평글을 발췌할까 한다. 때마침 단행본 <인물과 사상> 11권에 고종석씨가 위의 책에 대한 비평으로 "두 권의 책에 대한 메모"라는 글을 썼다. 복잡한 부분은 빼고 좀 일반적이고 좋았던 부분만을 옮겨본다.

똘레랑스를 앵똘레랑스에까지 적용할 순 없다

홍세화의 <쎄느강은..>은 대체로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 사회와 과거에 살았던 한국 사회를 비교하면서, 한국 사회가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 정의에 대한 열망 한 편에 개인주의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이념적 좌표는 미국식의 '리버럴'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은 내 자의적인 재단이다. 유럽에서 오래 산 그는 리베랄(liberal)이라는 말에서 프랑스 우익의 기미를 느낄 것이고, 또 이 책의 한 글에서 자신은 지금도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한데, '모태 우파'인 나도 이 책에서 그가 개진하는 견해들에는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떤 견해들에는 완전히 공감했고, 다른 견해들에는 상당한 유보를 둔 채 공감했지만.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인상깊게 읽은 것은 <똘레랑스에 붙이는 두 개의 사족>과 <수학과 글쓰기 2>이다. ("수학과 글쓰기 1"은 나의 홈페이지의 <에세이>에서 "양비론 비판"이라는 글에 인용한 바 있다-편집자 주) 첫번째 저서를 통해서 '똘레랑스(관용, 너그러움)'라는 말을 우리 사회에 넓게 유포시킨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똘레랑스'의 외연을 확정하려고 한다. 저자가 똘레랑스에 붙인 사족은 "똘레랑스의 대상은 남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고, 두 번째 사족은 "한국의 극우세력에게는 똘레랑스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 사족을 통해서 저자는 남에 대한 너그러움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나란히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두 번째 사족을 통해서는 극우는 극단주의의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엥똘레랑스(불관용)을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첫번째 사족은 한국 사회의 지도층을 겨냥해 붙여진 것이다. 대필(代筆), 대역(代驛) 풍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식인 사회, 학위 논문을 심사받자면 수백만 원이 들어간다는 대학사회 같은 것이 그가 거론하는 예다. 나는 거기에 사족을 붙여 그가 다른 글에서 지나가듯 얘기한 고쉬 카비아르(캐비어 좌파)도 끼워 넣겠다. 명예와 안락 속에서 혁명의 쇠퇴를 서러워하고 정권을 모욕하고 밀림 속의 게릴라를 찬양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신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의 미감을 거스른다.

<쎄느강..>의 저자가 똘레랑스에 붙인 두번째 사족은 특히 한국의 정치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저자는 <조선일보>가 결국 최장집 교수에게 승리를 거둔 것은 한국의 극우세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유럽과는 달리 한국의 극우세력은 분단 이래 50여년 동안 집권세력이었고,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권력의 주도권을 처음으로 잃은 뒤에도 이 정부에 극우세력을 밀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극우세력의 언로가 차단되어 있는 게 아니라 진보세력의 언로가 차단되어 있다고 지적한 뒤, 저자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제한돼 있고 진보정당조차 없는 한국에서는 극우세력에 대하여 똘레랑스 운운할 처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에 똘레랑스를 보일 수 없다. 그런데 극우는 앵똘레랑스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극우세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극우와 광신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고 강조하고 나서,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고 있다.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저자의 의견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단, 여기에도 사족을 하나만 붙인다면 광신은 극우의 뿌리만이 아니라 모든 극단적인 이념의 뿌리이고, 똘레랑스는 극우만이 아니라 모든 극단적인 이념(그것이 종교의 옷을 입었든, 정치 사상의 옷을 입었든, 민족운동의 옷을 입었든, 과학의 옷을 입었든)에 대하여 절제되야 한다는 것이다. <쎄느강...>의 저자의 생각은 주류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상의 자유시장은 옹호되야 하지만,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까지 옹호할 수는 없다는 생각말이다.

<수학과 글쓰기 2>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한 컬럼을 소재로 삼아 칼럼 필자가 중등수학의 '동류항 묶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홍세화가 예로 든 <대통령과 아들>이라는 컬럼은 나도 프랑스에서 읽으면서 혀를 찬 기억이 있다. 칼럼의 요점은 조순씨의 아들들, 김현철씨, 김홍일 의원, 이회창씨의 아들들이 모두 아버지의 대권욕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홍세화의 글을 따라가 보자. "(김 주필의 칼럼에 따르면) 대통령인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마구 분탕질친 아들이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희생자가 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든 범법자, 가해자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또 이유가 어쨌건 군대를 가지 않은 게 회생자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니, 그 논리를 발전시키면 군대가는 놈들은 모두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무리한 동류항 묶기를 통해서 칼럼 필자(김대중 주필)가 노리는 것은 일종의 '물타기'라고 <쎄느강...>의 저자는 판단한다. 저자는 그 칼럼이 게재된 시점이 김현철씨가 한보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갇혀있고,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던 이회창 후보가 아들들의 병역 문제라는 암초에 걸려 인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칼럼의 억지 동류항 묶기가 수학능력의 부족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 공부'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억지 동류항 묶기에 동원하기 위해서 조순씨 아들들의 프라이버시를 만천하에 드러낸 데에 대해서는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나 양식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나는 한국의 극우선동가들이 대체로 부도덕하기보다는 몰취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윤리감각이 아니라 심미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김대중 주필이나 그 신문사의 다른 한두 필자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혹시 그들의 글을 따져보는 데에는 심미안 기준만이 아니라 윤리적 기준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 신문을 보고 있다면 확실한 판단이 섰을 텐데, 그들의 글을 읽은 지가 하도 오래 돼서 자신이 없다.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이 책에 대해 방금 이런저런 트집을 잡기는 했지만(많은 부분을 생략했음-편집자 주), 내가 전반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아야 하겠다. 특히,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잊고 있는 사실,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쎄느강...>의 저자 덕분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억해냈다. 그의 말대로 "북한 어린이들의 주린 배도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나중에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은 기다려 줄 수 있다."

<조선일보> 안 사보기 운동

마지막으로 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에 실린 홍세화씨의 "<조선일보> 안 사보기 운동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강준만 교수가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을 포기한 데에 대해 홍세화씨가 나선 모양이다. (물론, 강 교수도 전략을 바꾼 것에 불과하지만)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나도 e-mail의 글머리에 아래의 구호(?)를 넣기로 했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운동을 펼칠 것을 제의하고자 한다. 하나는 '<조선일보> 안 사보기 운동'이며, 둘은 '대신 읽어주기' 운동이다. 우선 나부터 친구, 가족, 독자에게 보내는 모든 글에 '<조선일보>를 사지도 읽지도 맙시다'라는 말을 글머리에 붙일 것이다. 친구, 가족, 독자들도 나와 똑같이 할 것을 부탁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인들에게 똑같이 할 것을 부탁하고...
<인물과 사상> 독자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조선일보>를 사지도 읽지도 맙시다'를 모든 글머리에 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