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을 읽고 나서 (1999. 4~5.)

1. 오래된 사랑의 습관: <노영심의 선물>

최근에 예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노영심의 선물>...
노영심씨는 변진섭의 "희망사항"으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노영심이라는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동안 계속되었던 그 프로그램은 많은 좋은 음악인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고, 노영심씨의 어눌하지만 총명하고, 맑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그래서 함께 동화되고 싶은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 책 뒤편에는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의 추천글이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부재로 붙어있는 "오래된 사랑의 습관"이란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영심씨가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긴 하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과 사랑의 정서로 선물을 주어온 지는 정말 몰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서서히 깨닫는 것이지만 항상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성숙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곧잘하곤 했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엘리트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자기 구도를 해 온 도인인가...그것도 아니면...
요사이 드는 생각은, 타인의 삶을 깊이있게 읽어내고 그들의 빈 자리를 채워줄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일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노영심씨는 참으로 성숙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선물하는 물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받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들어간, 그리고 그 사람에게 진정 만족함을 줄 수 있는 가치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노영심씨의 선물은 성숙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사이처럼 돈의 액수로, 혹은 특정한 상표에 가치를 두려는 선물의 왜곡된 정서들을 성찰할 수 있는 양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독 혹은, 선물(?)을 권합니다.

2.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

친구의 선물로 읽게 된 이 책은 양장본의 책이 아닌 손바닥 크기의 작은 책자였습니다.
모양새가 귀엽고 책의 내용도 좋아서 아마 꽤나 아끼는 책이 될 듯 합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한 말이나 적은 글들을 류시화씨가 편집한 것으로 많은 사색과 청빈한 스님의 정서가 깊이 배여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법정 스님의 생각에 대한 작은 불편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정 스님이 얼마 전 명동 성당에서 법문을 하신 것을 이 책에는 편집해 놓았습니다. 류시화 시인도 이 부분은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으며 법정 스님의 종교에 대한 표용적 자세를 크게 평가한 듯 합니다. 글의 마지막에서 법정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께 비옵니다. 마음 속 깊이 좌절의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오만해지기 쉬운 이들이 겸손과 포용의 덕을 지니도록 깨우쳐 주소서. 그리고 이 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깨우쳐 주옵소서. 아멘."

법정 스님의 개인적인 사색과 구도자의 삶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존경하지만 기독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포용이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음이 아쉽습니다. 성탄절 아기 예수를 기념하며 했던 법정 스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물음표들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은 예수에게 기도하지만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무런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유일한 신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예수 자신을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리라 설교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이 말은 자기 스스로의 구도로 신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 자신을 믿음이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영육적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였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은 예수가 진정한 신의 아들임을 믿는 것이거나 아니면 미치광이, 시대 착오적 거짓 선지자라고 매도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라도 자신이 특정한 신의 아들임을 주장하거나 자신 외에 구원이 없다고 할 때에 그 사람의 말에 대한 반응은, 그를 믿든지 아니면 그를 배척하는 것밖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법정 스님의 포용은 하나의 모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예수께 기도드린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시 물어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3.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백금산 편집 (개혁과 부흥사)

4월초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저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하면 부흥을 떠올리게 되고, 또한 예일대학의 뛰어난 교수였다는 것이 전부였던 저에게 그의 개인적인 삶을 접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신앙적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그의 청년시절 했던 다짐들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들은 같은 나이를, 아니 몇 년을 더 살고 있는 저 스스로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다짐들에 비추어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4. 월간 "복음과 상황" 4월호

이번 호에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은 글을 많이 접하여 기뻤습니다.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1) 미답지론으로 많은 기독인을 깨우쳤던 황병구씨의 "이삼십대 크리스찬에게 고함"
2) 평신도를 깨치고 있는 송인규 목사님의 "안식일",
3) 독자로서 진화, 창조론 논쟁에 자끄 모노를 언급한 남지약씨의 "우연의 매개, 하나님의 주사위"
4) 영화를 보는 관점을 개론적으로 소개한 유재희 학사님의 "영화는 햄버거가 아니다"

5.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진중권(개마고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진중권씨가 한국의 우익으로 대표되는 조선일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의 조갑제,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 "선택"의 이문열씨의 텍스트를 분해함으로 우익의 사상이 파시즘에 다름아님을 보여준 책입니다. 진중권씨의 글쓰는 태도는 저의 취향과는 사뭇 반대되긴 하지만 텍스트를 해체하여 그 사상을 밝히는 노력을 높이 살만 하다고 하겠습니다.

6. "그리스도교의 비종교화"-박봉랑 (대한기독교서회)

디트리히 본회퍼의 연구서인 이 책은 대한 범문사에서 출판되었다가 98년에 다시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새로 발간하게 된 양장본의 책입니다. 본회퍼는 반 나치운동에 가담하여 독재정치와 싸우다가 히틀러 정권이 무너지기 불과 며칠 전에 게쉬타포에게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청년 신학자입니다.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책이 그 중 꽤 좋은 연구서라고 사려됩니다. 박삼종 형제의 권유로 책을 읽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좀더 나은 사고를 가져다 주리라 기대합니다.

7. 인물과 사상 제10권 - 강준만 (개마고원)

소개 페이지에서도 거론했듯이 강준만 교수는 한국 사회의 논객들과는 다른 특이함이 있다. 흔히 실명비판으로 악명도 많이 얻었지만, 그의 사고의 바탕에는 '모두가 썩었다'는 싸잡기식 비판을 지양하고 그 중에서도 더나은 견해를 취하여 키우려는 현실적 감각이 있다. 이번 책에서는 김대중 정권, 김근태 부총재, 복거일, 손숙에 대한 글과 "박노해를 위한 변명"(제9권)에 대한 반론 글과 앤서니 기든스를 조명한 조흡씨의 글들이 실려있다.

8.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버트란트 러셀

이 책은 범문사에서 나왔다가 최근에 그의 종교에 대한 글 몇 편이 덧붙여져 새로 출간되었기에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어리석게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러셀의 어리석음을 진단하기 위해'서 였으나 지금은 사뭇 생각이 다르다. 물론, 단순히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의 세계관이라는 잣대로 기독교에 대한 변호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뒤편에 우뚝 서있는 러셀에 대한 방대한 지식없이 단순히 이 책을 가지고 종교가 어떻고 하는 것은 하나의 "당랑지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러셀의 행적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언급때문이다.

"아인시타인의 경우 프린스턴 대학에서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간혹 엄숙하게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아인시타인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 러셀은 적극적으로 운동을 했다. 당대의 문제에 관해 광범위하게 글을 쓰고 시위를 주도했다. 그래서 러셀은 그때나 지금이나 욕설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러셀의 그의 지성의 광범위함 이외에도 이러한 철저한 실천성과 노후에도 던져버렸던 보수적 생각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편지에도 일일히 답장을 보낸 세심함, 마지막으로 핵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가 나름대로의 개인적 죄가 있고,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심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의 그릇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책 한 권으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근본주의적 어리석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9. 탈진, 헌신의 증거인가? - 엘리자베스 스코글런드 (IVP)

주위로 부터의 기대감과 나만이 이일을 할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나태함의 죄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에 끊임없는 채찍질을 해대고 있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분량도 작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 될 듯 하다.

10. 대천덕 자서전 - 대천덕 (홍성사)

말 그대로 "예수원"에 있는 대천덕 신부님의 자서전이다. 예수원을 다녀온 이상국 형제가 했던 말로 책 소개를 대신한다. "흔히 은사운동에 빠져있는 이들은 사회참여의 문제에 부족하기 마련인데 대천덕 신부님은 상당한 균형점을 보여 주었다." 일독을 권한다.

11. 제3의 길 - 앤서니 기든스 (생각의 나무)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어 오다가 이제서야 일독에 들어갔다. 기든스의 그 사상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별 언급이 없다가 매스컴과 더불어 배스트 셀러에 올라 그리 마음이 탐탁치는 않았다. 조흡씨의 말처럼 "제3의 길"이 어떤 이론적 맥락에서 생겨난 것인지 이 책과 더불어 30권에 이르는 많은 그의 저작과 참고 도서를 통해 기든스를 조명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