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 필립 얀시

들어가면서...

<Christianity Today>지의 편집장인 필립 얀시의 본서는 IVP에서 번역 출판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베스트 셀러 예감"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 사이의 근본적 차이인 "은혜"라는 주제를 감동있게 서술해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짧은 이야기에 크게 감동하였는데, 그 부분을 조금 나누고자 한다. 특히, 두번째 대목은 이 시대에 자유를 부르짖는 많은 여성들에게 낙태라는 이슈를 놓고 꼭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부분이기도 하다.

사랑에 애타는 아버지

소녀는 미시간 주 트래버스 시티 위쪽 버찌 농장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약간 구식이라 딸이 듣는 음악, 코걸이, 치마 길이 따위에 과민 반응을 보이곤 한다. 어쩌다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면 소녀는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 날도 말다툼 후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자 딸이 소리친다. "아빠가 미워요!" 그 날 밤 소녀는 그 동안 생각으로만 수없이 연습했던 일을 행동에 옮긴다. 가출을 한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전에 교회 고등부에서 타이거즈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한 번 밖에 가 본 일이 없다. 트래버스 시티 신문마다 디트로이트 시내 갱단, 마약, 폭력 기사가 무서울 정도로 자세히 보도 되고 있던 터라 소녀는 부모가 설마 그런 곳으로 자기를 찾아나서지는 않으리라 단정한다.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라면 모를까 디트로이트는 아니겠지.

이틀째 되던 날 소녀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차를 몰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차도 태워 주고 점심도 사 주고 머물 곳도 마련해 준다. 소녀는 남자가 준 알약을 먹고 생전 몰랐던 기분에 빠져든다. 소녀는 '역시 내가 옳았어. 엄머 아빠는 재미있는 건 하나도 못하게 했던 거야.'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한 해가 별 탈 없이 지나간다. 큰 차를 모는 남자-소녀에게 '사장님'으로 통하는-는 소녀에게 남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몇 가지 가르친다. 상대가 아직 미성년자인만큼 남자들이 내는 돈에도 웃돈이 붙는다. 소녀는 마음껏 룸 서비스도 주문해 가며 빌딩 옥상의 고급 주택에서 살고 있다. 가끔 친구들이 생각날 때도 잇지만 지금은 자기가 거기서 자랐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이 답답하고 촌스럽게 보인다.

소녀는 어느 날 우유팩 뒷면에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기 사진이 실린 것으로 보고 잠시 놀란다. 하지만 머리는 이제 금발이고 짙은 화장에 여기저기 구멍도 뚫고 보석까지 단 여자를 그 아이로 착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친구들도 대부분 가출을 하긴 했지만 디트로이트 바닥에서 서로 밀고하는 일이란 없다.

1년이 지나면서 소녀의 얼굴에 병색이 돌기 시작한다. 돌연 낯빛이 바뀌는 사장을 보며 소녀는 경악한다. "요즘같은 세상에 빈둥거려서는 안돼." 사장이 불만을 표하고 소녀는 어느새 1원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여전히 하룻밤에 두세건을 건지기는 하지만 이제는 큰 돈도 못 받는데다 그나마 받는 돈도 마약을 사는데 쓰면 끝이다. 겨울이 오자 소녀는 대형 백화점 밖 쇠창살에 기대어 잔다. 그러나 '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한밤중 디트로이트 시내는 십대 소녀가 경계를 풀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어둠이 깔려 온다. 기침이 심해진다.

그 날 밤도 사람들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는데 한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무대의 주인공 같던 기분은 더 이상 간 데 없고 춥고 무서운 도시의 길 잃은 아이의 심정만 남는다. 소녀는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주머니는 비어 있는데 배가 고프다. 대책이 필요하다. 소녀는 바닥에 웅크리고 코트 위에 신문지까지 덮어 쓴 채 떨고 있다. 불현듯 끊겼던 기억이 되살아 나며 하나의 영상이 가슴 가득 떠오른다. 천지에 벚꽃이 만발한 5월의 트래버스 시티, 소녀의 황금빛 사냥개가 테니스 공을 찾아 벚꽃이 흐드러진 나무 숲 속을 달리는 장면.

"하나님 어쩌다 제가 집을 나왔을까요?" 소녀가 혼잣말로 중얼댄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우리 집 개도 나보다 잘 먹는데." 소녀는 흐느낀다. 그리고 한순간에 깨닫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연거푸 세 차례 전화를 걸지만 계속 응답기만 울린다. 처음 두 번은 그냥 끊지만 세 번째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빠 엄마, 저예요. 집에 갈 지도 모르겠어요. 집 방향 버스를 타요. 그 쪽에 가면 자정쯤 될 거예요. 아빠 엄마가 없으면 그냥 버스에 앉아 캐나다까지 가겠죠."

버스가 디트로이트와 트래버스 시티 사이의 경유지를 모두 통과하는 데는 일곱 시간쯤 걸린다. 그 사이 소녀는 자기 계획의 허점을 깨닫는다. 만약 아빠 엄마가 출타 중이라 메시지를 못 받는다면? 하루 이틀 더 기다린 후 직접 통화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집에 계신다 해도 딸 하나 오래 전에 죽은 셈 치고 단념하고 계실지도 몰라. 충격을 극복할 시간을 드릴 걸.

이런 염려 중에도 아버지한테 할 말을 준비하느라 소녀의 생각을 어지럽기만 하다.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다 제 잘못이에요. 아빠, 용서해 주세요." 수없이 되뇌이는 말. 연습인데도 벌써 목이 잠긴다. 남한테 잘못을 빌어 본 적이 언제던가.

버스는 베이 시티부터 불을 켜고 달린다. 숱한 바퀴에 스쳐 달아진 도로 위로 작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아스팔트에서 뿌옇게 김이 난다. 고향의 밤을 칠흑같이 어둡다는 것을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슴 한 마리가 쏜살같이 길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버스가 잠시 출렁인다. 길 옆에는 트래버스 시티까지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사라지고 또 나왔다 사라졌다. '오, 하나님.'

버스의 에어 브레이크가 쉿 소리를 내며 드디어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자 운전사가 쉰 소리로 안내 방송을 한다. "정차 시간은 15분입니다." 소녀의 인생을 판가름 낼 운명의 15분. 소녀는 손거울로 얼굴을 살피고 머리를 매만진 뒤 위아래 이로 립스틱을 지워 낸다. 손가락 끝의 담배 얼룩을 보며 부모님이 자기를 알아볼까 잠시 생각해 본다. 물론 나와 계신 경우의 이야기다.

앞일을 전혀 모른 채 소년느 터미널로 들어선다.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해 봤지만 정작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콘크리트 벽에 플라스틱 의자뿐인 미시간 주 트래버스 시티 버스 터미널 안에 형제 자매부터 시작해, 삼촌들, 사촌들, 할머니, 증조 할머니, 이조 할머니까지 무려 사십 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이 다 나와 서 있는 것이다. 우스꽝 스러운 파티 모자를 쓰고는 요란한 악기를 불면서. 터미널 벽은 온통 컴퓨터르 뽑아 낸 "환영!"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다.

환영 인파 속에서 아빠가 다가오자 소녀는 녹아 내리는 수은처럼 눈물이 아른거리는 눈으로 아빠를 보며, 외워 둔 말을 시작한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말을 막는다. "쉿!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용서를 빌고 있을 시간이 없어. 파티에 늦을라. 집에서 잔치가 널 기다리고 있거든."

뱀 같은 지혜

...클린턴 대통령은 인터뷰 하던 날, 아침에 우리는 전국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테레사 수녀의 말을 들었다. 놀라운 시간이었다. 테레사 수녀의 양편으로 약간 높게 마련된 내빈석에 클린턴 부부와 고어 부부가 앉아 있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83세의 가녀린 노수녀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청중석이 잘 보이도록 테레사 수녀를 위해 특수 연단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등이 휘어진 140센티미터의 노수녀에게는 마이크가 멀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드러진 억양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서 그 소리가 온 강당에 가득 퍼졌다.

테레사 수녀는 미국이 '아프도록 준다'는 사랑의 본뜻을 상실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이기적인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증거는 낙태이며 그 결과가 만연된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기 아기를 죽여도 그냥 두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할 수 있습니까?...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국민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폭력이 걱정이다,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곳의 굶주린 아이들이 걱정이다 하면서 어머니의 고의적인 선택으로 죽어가는 수백만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신했으나 이가를 윈치 않는 여자들에게 해결책을 하나 내 놓았다.

"그 아이를 나한테 주십시오. 내가 원합니다. 내가 돌보겠습니다. 낙태당할 아이라면 누구든 받아 그 아이를 사랑하고 그 아이로부터 사랑받을 다른 부부에게 넘겨줄 의향이 있습니다."

이미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의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 삼천 명의 아기를 연결시켜 준 바 있다...